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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놓인 임상강사 신문고가 없다
[ 2011년 04월 14일 21시 00분 ]
[기획 5]대학교 시간강사들이 열악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연이어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사회통합위원회 등 정부기관들과 국회, 시민단체, 교수단체 등은 앞다퉈 이들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 지난해 1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시간강사제도를 폐지하고 이들의 정식 명칭을 ‘강사’로 바꾸는 한편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임상강사(전임의, fellow)들에게 이런 변화는 그저 남의 얘기에 불과하다.

“임상강사? 우리는 관리대상 아닙니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임상강사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될까.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강사의 법적 지위는 병원장과 계약을 체결한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동부의 기간제법 시행령은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문가로 분류되는 의사는 변호사, 약사 등과 함께 16개 예외직종에 포함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유급으로 근무하는 임상강사는 공무원연금 및 사학연금, 건강보험 등 4대보험 혜택을 받고 있지만 무급 임상강사들에게는 이런 혜택도 없다. 그야말로 일은 하되 관리대상은 아닌 특수한 노동력에 불과하다.

대학병원에 근무하지만 교원의 지위를 얻는 것도 아니다. 교육공무원법 및 사립학교법은 학장을 포함해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에게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해 왔으며 교과부도 이들에 대해 별도의 관리를 하지 않는다. 임상강사는 원칙적으로 병원장과 임용계약을 맺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에 공식적인 질의를 해도 “임상강사는 병원장과 임용계약을 맺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부처 관리대상은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그렇다고 대한병원협회나 기타 유관기관에서 이들을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강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국회에서 조차도 임상강사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교수-제자 도제식 교육, 병원에서도 간섭 못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누구의 관리도 받지 못하고 있는 임상강사들의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병원이 쥐고 있는 셈이 된다. 임상강사들의 적합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병원도 극히 드물다.

일부 병원들이 ‘임상강사들은 병원의 미래이자 내부 고객’이라며 자체 임상강사 수련규정 및 채용ㆍ복무규정을 두고 그들의 처우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정원 규정도 없어 단지 필요에 따라 채용되는 방식이다 보니 병원과 계약서조차 없이 근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무급임상강사들이 넘쳐난다.


무급 임상강사 채용을 임상강사들의 투표로 결정하기도 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임상강사 채용 여부를 동료들이 결정하는 여건 속에서 병원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리 만무하다. 또 병원 입장에서는 값싼 전문의 인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영적인 측면도 무시하기 어렵다.

병원이 임상강사 관리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임상강사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전문영역에서 고착화된 교수-제자 간 도제식 교육법 때문이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갖춘 임상강사들은 각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업적을 쌓은 교수들 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런 구조에서 교수-제자 사이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병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또 병원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 병원이 수련과정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쉬우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임상강사의 몫이 되기도 한다.

할 말 많은 임상강사들 하지만…
최근 서울 K대학교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에 근무하던 A조교는 지도교수와 학교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도교수의 부당한 대우가 도를 넘어섰고 개인용무 등 사적인 부분에서의 일이 연이어 주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가 모멸감을 줬다는 게 소송 제기 이유다.

그간 교수와 제자 사이에 부당한 대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논란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자 K대학교와 의료계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소송 제기 직후 임상교수 및 기초의학교실 교수들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학교 밖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조교 입장에서 보면 소송 이외에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는 없다. 임상강사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특정 사례를 중심으로 교수와 제자 사이를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일방적인 소통구조에 대한 변화와 의료계의 임상강사 제도 개선 등 구조적 변화가 따르지 않는 한 제자가 교수를 고발하는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그 누구의 관리도 받지 못하는 임상강사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곳이 없고 이들의 얘기를 들어줄 곳도 없다. K대학교 조교처럼 문제해결 수단으로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일 수 있으며 이런 현상이 의료계에서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전공의와 공중보건의들은 공식적인 협의체를 통해 그들의 이익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임상강사들은 그런 장치도 없다. 3~5년 정도 신분을 유지하는 전공의, 공중보건의와 달리 임상강사들은 대부분 1년 계약단위로 신분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협의체 구성이 쉽지 않다.

과거 의약분업 투쟁을 기점으로 ‘전국임상강사협의회’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서울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강사는 “레지던트보다 더 바쁜 임상강사들이 협의체 활동을 할 시간이나 있겠냐”면서 “만약 협의체 활동을 하려면 다 같이 동참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그것 자체가 쉽지 않고 설사 나선다고 해도 전문의까지 딴 우리들 하소연을 정부든 병원이든 누가 귀 기울여 들어주겠냐”고 말했다.

화려함 속 무관심 계층…“빵 한 조각 더 달라는 것 아니다”
2년차에 접어든다는 한 대학병원 임상강사는 “말이 좋아 세부 수련을 받는 임상강사이지 사실은 전공의 4년 수련이 부족해 추가 수련을 받고 있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상강사는 병원에서 붙여준 화려한 수식어에 불과하다. 두 명의 월급을 다섯 명이 나누며 생활하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기약도 없다. 제대로 된 수련을 받는다는 느낌도 없다. 또 그만 두자니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아깝고 마땅히 갈 곳도 여의치 않다”고 한탄했다.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강사는 상황이 이쯤 되면 큰 목소리 한 번 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문의 자격까지 갖춘 의사들이 ‘빵 한 조각 더 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두렵고, 사회적인 호응을 얻지 못해 우리들만의 문제 제기로 끝나면 그 다음은 누가 책임 지냐”고 반문했다.

그는 “임상강사와 관련해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좁게는 병원, 그리고 넓게는 의료계 및 학계에서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질 임금이 적으니 임금을 올려주고, 숙직실 환경이 열악하니 숙직실을 개선하는 일차원적인 접근으로는 임상강사들의 요구를 대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현재 임상강사를 고용해 값싸게 활용하고 있는 병원들은 임상강사들의 미래를 팔아 환자를 치료하는 꼴”이라면서 “임상강사 제도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곳 아니면 이렇게 수련할 곳도 없다. 그러나 임사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임상강사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최종학기자 haga8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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