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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펠로우, 그들만의 위험한 '비밀계약'
[ 2011년 04월 13일 21시 04분 ]
[기획 4]총 11년이다.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여기에 군복무시 3년이 추가돼 무려 14년의 세월을 걸어온 이들의 현재 연봉은 ‘0’원이다.

‘억’을 향한다는 고교 동창들 연봉 얘기가 나올 때면 울화가 치밀지만 매번 실낱같은 희망으로 삭히고 마는 이들. 바로 무급 임상강사다.

‘임상강사’라는 신분 자체가 철저히 대학병원 내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인 만큼 법적 정체성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보수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병원에 머물러 있는 무급 임상강사의 경우 더욱 베일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데일리메디가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야심차게 진행했던 현황조사에서도 무급 임상강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어쩌면 무급 임상강사 현황파악 불발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계, 의학계 등의 전언을 통해 추계되는 무급 임상강사 수는 100여 명. 이 중 서울 소재 S병원이 한 해 평균 40~60명을 채용,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E의료원, K대병원, 경북 소재 K대병원 등 다수의 대학병원에서 무급 임상강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무급 임상강사는 전문의 과잉공급과 병원 경영난이 맞물리면서 파생된 제도. 더욱이 최근 서로의 필요성이 증가하며 그 수가 더욱 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들에 따르면 소위 잘 나가는 대학병원의 전체 임상강사 정원 중 20~30%는 무급이다.

보수 담보없는 계약은 원천무효

하지만 여기에 충격적인 사실이 감춰져 있음이 취재결과 확인됐다. 데일리메디가 고용노동부에 모 대학병원 임상강사의 근로계약서와 모집공고를 보내 행정해석을 의뢰한 결과 "명백한 위법"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쌍방 합의 하에 이뤄진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보수를 담보하지 않은 경우 위법이며 그 계약은 ‘원천무효’라는게 노동부의 판단이다. 무급 임상강사를 채용하고 있는 일선 대학병원들 모두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무급 임상강사의 근로계약 위법 판단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근로자성 여부다. 노동부 역시 임상강사의 근로자성 여부를 놓고 고심했다. 임상강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와는 달리 수련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근로자로 봐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관리 아래 비자주적인 근로를 제공해야 하고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사업의 종사자라는 요건이 성립돼야 한다.

노동부는 검토결과 임상강사는 위 요건에 모두 해당하는 명백한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근무조건에 병원이 규정하는 진료, 연구, 교육, 봉사 등의 복무사항이 명시돼 있고 의료업 역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사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대학병원 임상강사는 단순 술기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수련생이 아닌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근로자와의 무임금 계약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가들 역시 임상강사는 근로자 신분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박형철 노무사는 “평소 임상강사의 업무 성격과 1년 단위의 근로계약 방식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문배 노무사는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되는 이상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근로조건에 관한 일부의 사정이 결여됐다는 사유만으로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자폭 가능성 ‘0%’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명백한 위법사항인 무급 임상강사 제도가 10여 년 동안 아무런 잡음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과 임상강사 양측의 합의로 성립된 계약인 만큼 그들만의 비밀로 유지 되는게 통상적이기 때문이다.

‘교수’ 직함을 좇는 임상강사 입장에서는 긁어 부스럼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을 뿐더러 공짜로 고급 노동력을 얻은 병원들이 나설 이유는 더욱 만무하다는 분석이다.

또 일부 병원의 경우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도 있어 문제가 불거질 소지는 제로에 가깝다.

한 대학병원 임상강사는 “무급 문제는 뇌관 없는 폭탄과 같다”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자폭을 감행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렇다 보니 일선 대학병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버젓이 무급 임상강사 모집 공고를 내는가 하면 진료과에서 임상강사 정원 요청이 있을 경우 무급 선발을 종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지방의 한 대학병원은 올해 초 ‘무급 임상강사 초빙’이라는 타이틀로 홈페이지에 채용공고를 냈다. 이 병원은 서류 제출시 모집구문에 '임상강사(무급)'라고 명시하라는 친절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진료과 요청에 의해 매년 무급 임상강사를 채용해 왔다”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진료과장은 “과 운영상 임상강사가 필요해 병원 측에 요청했는데 무급으로 선발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유급과 무급 정원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현재 가장 많은 무급 임상강사를 채용하고 있는 S병원의 경우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 순차적으로 인원을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S병원 관계자는 “그동안 기회 제공 차원에서 무급 임상강사 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향후 정원을 줄여나갈 계획”이라며 “근로 강도를 떠나 무급이라는 것은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에 따르면 무급 임상강사의 근로계약 문제가 불거질 경우 해당 병원은 근로기준법 제43조 임금 지불에 관한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게 된다.

또 근기법 제77조에는 ‘사용자는 양성공, 수습, 그 밖의 명칭을 불문하고 기능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혹사하거나 가사, 그 밖의 기능 습득에 관계없는 업무에 종사시키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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