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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임상강사 선장원·신선형 러브스토리
[ 2011년 04월 12일 22시 30분 ]
[기획 3]
각자 수술방을 나온 두 사람은 자정을 꼬박 넘기고서야 마주 앉았다. 한 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자 오후 내내 고약하리만치 심술을 부렸던 환자 이야기, 모든 신경이 곤두설 만큼 힘겨웠던 오늘의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술잔에 ‘사랑의 묘약’이라도 탔던 것일까. 36살 남성과 32살 여성이 사랑을 하고 있다.
女의 이야기
: 2009년 말 신선형(여·32)씨는 외과 레지던트 4년차로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전남의대를 졸업한 선형씨는 인턴도, 레지던트도 모두 전남대병원에서 보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드름은 물론 게으름도 피울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전남대병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자 ‘외과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그 무렵, 한 남자가 심장 한 켠을 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男의 이야기
: 봉직의가 되길 원하는 선장원(남·36)씨는 올해로 임상강사 2년차에 접어든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지치고 지쳐 동이 트기만을 기다린다. 레지던트 4년차가 끝나갈 때 즈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같은 외과지만 파트가 나뉘어져 있어 처음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동료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 한밤에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렇게 시작됐다. 친한 오빠, 동생으로 이 둘의 술잔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우정도, 사랑도….
女의 이야기
: 레지던트 1년차 때부터 이 병원 외과에서는 선형씨가 유일한 여자였다. 과에서는 장원씨와 “서로 사귀어 보라”라는 권유와 압박(?)이 대세를 이뤘다. 싫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집중하고 무엇이든 열심인 그가 좋았다. 워낙 밤늦게 일이 끝나다 보니 연애를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또 ‘이렇게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누가 이해해 주겠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공식적으로 연인임을 ‘선포’했다.
男의 이야기
: 자연스러움을 가장해 고백의 말을 꺼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좋았고, 꾸밈없는 모습은 더 좋았다. 힘들고 지쳤을 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넸다. 시간이 지나니 어깨나 배를 두드려 주고 싶은 사랑스런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운명이 제 아무리 우연을 가장할지언정,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동료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그녀의 ‘쿨(cool)’함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女의 이야기
: 임상강사가 되자마자 일이 쏟아진다. 그런데 묘하다. 심장 반은 교수님에 박혀 떨고, 다른 심장 반은 장원씨에 꽂혀 떤다. 그리고 말해버린다. “오빤 환자 옆에서 일할 때 정말 멋있는 것 같아….”
男의 이야기
: 길고 긴 수술이 끝나고 다들 녹초가 된 늦은 저녁, 한 여성이 눈에 찬다. 여느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액세서리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갑자기 박꽃 같은 웃음을 던진다. 다른 동료들이 시기 반, 부러움 반으로 “이 와중에 피어난 사랑”이라며 박수치고 환호한다.
그들의 이야기
: 한적한 일요일 저녁, 장원씨는 오늘도 병원에 나와 있다. 수술 동의서 작성에 앞서 환자와 상담하느라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피로는 쌓여만 가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하지만 이보다 좋은 ‘회복제’가 따로 있을까. 이달 말 둘은 사귄 지 400일이 된다. 연애 초, 서로의 의견과 처지를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는 이들. 혼란스럽고 속상한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병원 생활이지만 생각은 갈수록 닮아간다. 한 번쯤은 그 흔한 ‘사랑싸움’도 했을 법하지만 그들로부터 돌아온 대답, “싸움은 왜 하는 거죠?”(웃음)
“데이트는 밤 12시, 서로가 아니면 이해해줄 수 없는 일들”
장원씨와 선형씨의 아침은 보통 7시에서 7시30분 무렵 시작된다. 선형씨는 유방(breast)을 , 장원씨는 위(stomach)를 전공하고 있다. 하루가 시작되면 컨퍼런스 준비를 하고 병동 환자를 확인한다. 일주일 간 수술 스케줄을 확인한 후 수술이 없는 날은 저녁 시간을 이용해 논문 작성에 시간을 할애한다. 지방에 있는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보다 뒤쳐지고 싶지 않다. 두 남녀 모두의 ‘자존심’이다.
장원씨는 “수술을 마치고 모든 일과가 끝나야 만날 수 있어요. 밤에만 주로 데이트를 하는 거죠. 그러다보면 시간은 보통 11~12시 이후에요. 만약 수술이 너무 늦어져 새벽 1시를 넘기면 오늘은 ‘포기’하는 거에요”라고 말한다. 데이트 장소는 주로 화순전남대병원 근처 ‘번화가’인 화순 읍내 부근이다.
그에게 받은 선물이 무어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머리핀, 지갑, 목걸이, 곰 인형 등을 받았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이 머리핀도 오빠가 선물한 거에요. 대신 기념일 정도는 통과해요. 저는 센스있는 여자친구니까요.” 하지만 서로의 생일만큼은 특별한 날로 꼽힌다.
1년 전 장원씨의 생일날이었을까. 선형씨는 바쁜 와중에 화순 읍내로 나가 선물과 케익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선형씨는 당일날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고도 장원씨의 수술이 끝나지 않았던 탓이다. 심지어 다음날에는 외과 회식이 이어졌다. 결국 선형씨가 생일을 챙겨줬던 날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였다.
“서운하지 않았냐고요? 음…. 병원에서, 특히 외과에서 임상강사를 하려면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요. 오빠가 일부러 약속을 어긴 게 아니잖아요. 제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저 역시 수술이나 병원 일이 늦어지면 속상하긴 하지만 당연히 일이 최우선이죠. 같은 일을 하다보니 굳이 해명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 괜찮아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장원씨는 평일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4~5일 가량 수술 어시스트를 해요. 격주로 3개씩 수술이 잡히는데 수술방에 하루 종일 있을 때도 있어요. 평균 오후 8~9시 경 하루 일과가 끝난다고 보면 돼요”라고 말했다.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들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 인터뷰가 있기 얼마 전, 장원씨가 불미스럽게도 의료소송에 연관돼 있던 상태였는데 그 때도 선형씨는 큰 힘이 됐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180도 달라진다. 만약 선형씨가 장원씨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글쎄….
대학교수냐? 봉직의냐? “따로 또 같이”
임상강사 생활이 어느덧 2년차에 접어든 선형씨에게 요즘 들어 부쩍 교수님들이 의중을 물어온다. “대학에 남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지만 선형씨는 고민하고 있다. 우선 교수보다는 봉직의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울어 있어서다. 선형씨는 “광주, 전남 지역에는 여자 외과의사가 별로 없어요. 통틀어서도 제가 아마 5번째인가, 6번째일 거에요. 지금 후배들 중에야 있지만 제가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드물었죠. 그래서 봉직의를 하게 돼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여자가 유방외과를 전공하다보니 상당한 장점이 있을 것 같아 봉직의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위(stomach)를 전공하고 있는 장원씨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초조함과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대학병원에서는 위암 수술이 주를 이루지만 봉직의로 나가게 되면 암 수술 보다는 다른 ‘실력’들을 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장원씨는 “동료들은 대학에 남을 것도 아니면서 왜 쓸데없이 임상강사를 1년 더 하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요”라고 말했다.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저 역시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답답해요. 교수가 되든 안 되든 임상강사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돌이켜보면 막막하기 이를 데 없어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전남대병원 외과 위(stomach) 파트에서 임상강사는 장원씨 혼자다. 당직 때문에 주말은 물론,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다보니 임상강사의 ‘좌표’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잊고 살았다.
장원씨는 “글쎄요.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때로는 한계를 느껴요. 장점도 있지만 간혹 회의감 들죠. 처음에는 1년만하고 끝낼 거라 생각했지만 인생사, 어디 다 그런가요”라고 씁쓸해 했다. 그 간 느꼈던 서러움도 어렵사리 털어 놓았다. “대개는 교수님이 진로에 대해 묻지 않으시죠. 교수님도 자신의 일이 벅차고 힘드시니 그저 잘 도와줄 수 있는 임상강사를 원하는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장원씨는 “평생을 두고 1~2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어찌보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앞이 환하게 비춰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만큼 허탈한 일은 아마 없을 거 에요”라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선형씨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목에서는 같은 외과라도, 어떤 전공을 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확연히 구분되는 듯 했다. 그리고 선형씨는 대답했다. “분명히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설사 봉직의를 한다 해도 레지던트 4년으로는 어차피 부족하거든요. 요즘같이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는 분위기에서 임상강사 기간은 충분히 필요하다고 봐요.”
“웃고 울고 사랑하며” 조언자이자 함께 걷는 그들
이렇게 이들에게는 데이트도 일의 연속이다. 대화의 절반이 병원, 그리고 환자 이야기일 정도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보다 객관적인 조언자의 역할을 하면서 고된 병원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더없는 힘이 된다는 거다. 이대로라면 평생을 서로가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를 지켜줄 것 같다.
장원씨는 “인턴, 레지던트, 임상강사까지 그 동안 받았던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라는 점이 좋아요. 이 친구가 없었다면 병원 생활을 끈기있게 해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라고 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이내 선형씨도 “저야 병원 근처에 집을 얻어 편하게 출퇴근하고 있지만 병원에는 임상강사를 위한 숙소도 없고 연구실도 없어 때로는 안쓰러워요”라고 애틋함을 보였다. 그는 “그나마 간이 침대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말을 이었다.
병원 일이 끝나고 이 두 사람은 맥주 한 잔 씩을 하면 피로가 싹 풀린단다. 물론 스케줄이 일치해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오프라고 해도 다른 한 사람이 병원에 나와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학회라도 있는 주말이면 엇갈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 정도의 물리적인 ‘방해’로 끄떡할 이들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장원씨가 갑자기 “내가 교수하는 것은 싫지만 교수 남편은 되고 싶어요”라는 농을 던지자 선형씨가 장난스레 눈을 흘긴다. 선형씨는 쿨한 것이 매력이고 장원씨는 이해심 깊은 것이 매력이다. 장원씨는 항상 배려깊은 여자친구라는 점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쑥스러움에 ‘쿨하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선형씨는 “성격과 취향이 비슷한 것도 다행이지만 좋은 것을 같이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공통으로 좋아하는 건 다른 사람 눈에도 좋을 테니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20년 전 저희처럼 레지던트 때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한 외과 선배가 있어요. 또 바로 윗 년 차 커플도 임상강사 시절을 함께 고생하며 보낸 끝에 결혼까지 성공했고요. 우리가 3호 커플로 이름을 올리는 날도 오겠죠?”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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