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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억' 줄줄 새도 전혀 눈치 못챈 병원
[ 2011년 04월 11일 21시 00분 ]
[분석 하]법정에 선 경리과장 최모(51)씨의 얼굴은 고왔다.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했다. 범죄형 생김새가 따로 있다 한들 최씨는 그런 외양과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지난 1월17일 길고 긴 범죄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꼬박 3년 만이었다. 최씨에 대한 믿음이 돌연 경악을 금치 못할 비명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중년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해 온 서울 중구 P병원에서 172억원이라는 돈을 빼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편집자주]

친분이 두터웠던 것은 아니지만 최씨를 오랫동안 봐왔다는 병원 관계자는 최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착실하고 신망있는 사람이었다. 부서가 달라 사람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병원 내 분위기도 황당 그 자체였다.

어떻게 3년 동안 1~2억원도 아니고 무려 170억원에 가까운 돈을 횡령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사립대학교병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부감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경리부서가 물품, 재고, 수입, 지출 등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병원 공금의 용처 등 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어 엄청난 범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번 범행에 연루돼 있는 경리계장 박씨가 워낙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다는 후문. 그러나 범행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박씨는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었고, 결국 우울증까지 걸리게 되면서 이번 사건이 마침표를 찍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다른 관계자는 “평소 생활이나 성품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면서 “이 사람이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고 전했다.

P병원에서 예전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힌 다른 관계자는 “경리과장 최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30년 동안 그 곳에서만 근무했던 사람으로 나와는 10여년 가량 오며 가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회고한 대로라면 특별히 까탈스럽거나 성격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 좋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것부터 이 사건의 시발이 됐다고 하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본인도 1억원~2억원 횡령으로 시작했다가 금새 4~5억원으로, 그 다음에는 아마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리 돌려막고, 저리 돌려막으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 했다. 결국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게 되고 통제 불능한 상황에까지 직면하면서 아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렇게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도모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범죄는 끝나고 계산은 병원이…
속고 산 3년에 P병원은 지금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입을 닫았다. 사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P병원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대체 그렇게 간 큰 직원을 키운 병원이 어디냐는 것이 수군거림의 몸통이다. 세달 치 진료 수입 금액과 맞먹는 172억원이 빠져나간 사고가 터졌으니 두 달이 지나간 지금도 병원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공금 횡령 사실이 들통났다 하더라도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며 내부 직원들의 입단속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기자가 ‘경리과장’ 이야기를 꺼내자 이상하리만치 반응이 비슷했다. “아무 것도 모른다”, “왜 나한테 물어보냐”라며 하나같이 날선 표정이었다. 피하기에 급급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수도권 내 A대학병원 관계자는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몸집 불리기와 쏠림 현상으로 일부 대학병원들은 흑자는 커녕 진료 수입 자체가 평균치를 밑돌아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자꾸 노출이 돼봐야 안 좋은 인식만 강해지지 않겠나”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그 난리를 겪고 난 후 ‘경리과장’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최씨가 횡령한 금액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72억원이라는 금액은 말 그대로 P병원 한 달 진료 수입을 훨씬 웃돈다는 점에서 상당한 타격이다.

단순한 계산법이긴 하지만 한달 진료 수입이 50억원 가량이라고 추정했을 때 병원 전 직원 석달치의 노력이 고스란히 이 무속인에게 흘러 들어간 셈이다. 문제는 정신적인 피해액이다. 이는 물리적인 비용과는 별개다. 조직원들이 느낄 허탈감과 사기 저하는 그 어떤 비용으로도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고위 관계자는 “2011년 각 전문질환 센터 등을 집중 지원하는 등 직원이 심기일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시점에서 터진 일이라 안타깝다”면서 “혹 이번 일로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병원 전체적인 감사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내부감사를 진행하고 규정을 위반한 건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병원 감사실장은 “결국 그 피해는 조직 전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사람 한두 명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제도를 바꾸고 병원 자체적으로 건강하고 투명한 내부감사가 진행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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