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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 걸쳐 병원서 사라진 172억 사기극
[ 2011년 04월 10일 21시 25분 ]
[분석 상]
법정에 선 경리과장 최모(51)씨의 얼굴은 고왔다.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했다. 범죄형 생김새가 따로 있다 한들 최씨는 그런 외양과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지난 1월17일 길고 긴 범죄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꼬박 3년 만이었다. 최씨에 대한 믿음이 돌연 경악을 금치 못할 비명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중년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해 온 서울 중구 P병원에서 172억원이라는 돈을 빼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편집자주]
"천도제 지내야하는데 2000원만이 모자라…"
“결혼할 운명이 아닌데 결혼했어. 남편의 전처 영혼을 달래주는 천도제를 지내지 않으면 남편과 자식들에게 큰 화가 미칠 것이니, 그리 알아.”
시간은 200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서울 중구 P병원 경리과장 최모씨(51)씨는 우연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용하다’는 점집에 들렀다가 무속인 김모(61)씨로부터 불길한 말을 듣는다. 잊으려 애를 써도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친정 부모가 잇따라 다쳐 걱정하던 참이었다. 최씨는 무속인의 이 한 마디가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라 짐작은 했을까.
그렇게 악연은 시작됐다. 처음엔 2000만원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이후 최씨는 천도제와 기도 비용으로 2008년 6월까지 5억원을 김씨에게 건넸다. 최씨가 기도를 멈추겠다고 하면 김씨는 "만약 기도를 중단한다면 화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천도제를 지내지 않으면 친정 부모는 객사하고 집안에는 재앙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겁을 줬다.
브레이크 없는 범죄의 질주였다. 최씨는 결국 기도 비용을 대기 위해 30여년간 일한 병원의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최씨는 병원의 일일 운용자금을 부풀려 신청하는 방법으로 2008년 6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무려 172억원을 빼돌려 김씨의 주머니에 차곡차곡 채워줬다.
경리과장이었던 점을 악용해 최씨는 병원의 더듬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거짓을 말하고, 수많은 사람의 눈을 속였다. 그리고는 돈을 훔쳤다. 사건 발생 당시 병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에 휩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행여 이 일이 알려져 큰 독(毒)으로 다가올까 한 동안은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은 그대로 눈감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즉각 최씨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관할 경찰서에 고소했다. 30여년을 한 집안 식구처럼 철석같이 믿었던 이들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데는 찰나의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뚜껑을 열어보니 이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돈으로 무속인 김씨는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진 빚 10억원을 갚고, 명품 가방과 고가의 보석을 구입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김씨는 부산에 또 다른 점집을 열고, 특급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숙박비로 1억6000만원을 썼다”고 말했다.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 남자 접대부가 나오는 호스트바에 자주 갔고 스스로 서울과 부산에 호스트바 2곳을 차리기도 했다”면서 “무당 김 씨는 원래는 무당이 아니었는데 사채를 이용해서 유흥주점을 개업했다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가짜 무당 노릇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공금 유용하자, 어떠냐" 병원 지출결의서 위조
사실 경리과장 최씨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최씨는 바로 후임 계장인 박모씨(38)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도제에 갖다 바칠 돈이 필요하다는 따위의 말로는 ‘약발’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법인 고위 관계자의 부인을 들먹거렸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박씨는 이내 이 '위험천만'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분 부인이 나한테 부탁했다. 나와 함께 공금을 유용하는 것이 어떠냐”. 결국 최씨와 한 배를 탄 박씨는 2009년 8월 20일까지 병원 지출결의서를 위조하는데 가담했다. 2009년 11월 17일까지 병원에서 빼돌린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액은 무려 172억3000만원. 419회에 걸쳐서다. 놀라운 숫자다.
재판에서 검찰은 “최씨와 박씨는 병원 금전 출납 업무를 담당하는 자였지만 최씨가 기도비로 사용할 돈이 없자 병원 공금을 횡령했다”고 사건 요지를 밝혔다. 검찰은 “그렇게 해서 2011년 1월 17일까지 무속인 김씨가 최씨에게 건네받은 돈은 자그마치 212억원이었다. 그 중 현재까지 43억원을 반환했으나 김씨는 총169억원을 편취한 혐의가 인정됐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사건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러 수 겹으로 얽히고 섥혀있다. 출발부터였다. 범죄자끼리도 속고, 속이는 일로 점철됐다. 경리과장 최씨는 직속 후임인 박씨를 속였고 무속인 김씨는 최씨를 속여 172억원을 챙겼다. 이외에도 또 다른 무속인 김모(33)씨가 사기 및 방조죄로 얽혀 있는 구도다.
결국 최씨와 박씨는 횡령 및 사문서 위조로 덜미를 잡혔고 4명 모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처벌을 앞두고 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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