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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해진 개원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
[ 2011년 04월 08일 03시 04분 ]
성형외과 개원가가 아수라장이다. 서울 강남·압구정 일대에 들어서면 한 건물당 2~3곳씩 다른 성형외과가 문을 열고 영업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처참한 수준이다. 권위 있는 성형외과의 브랜드를 무단으로 가져가 분원을 여는가 하면 의료법상 금지된 불법광고도 서슴지 않는다. 황금알을 낳는 성형외과 시대는 아직 유효할까. 성형외과 개원가 이면의 그림자를 데일리메디가 살펴봤다.

서울 강남에서 ㄹ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A원장. 대학교수 경력을 포함해 30여년을 성형외과에 종사해온 그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10여년간 친분을 쌓고 지낸 의사 B가 ㄹ성형외과의 분점을 내고 싶다기에 허락했더니 얼마 후 불법 의료광고로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서 경고장이 날아온 것.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B는 개원 당시 A원장에게 봉직의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그는 당시 ㄹ성형외과 봉직의로 근무하던 2명이 B에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B는 별도의 마케팅이나 홈페이지 없이 간판만 같이 쓰면서 상표권 사용료로 월 600만원을 내겠다고 했다. 약정한 사용료는 8개월 동안 들어오다가 소식이 없었다.

그 무렵 A원장이 B에게 소개시켜준 봉직의들은 B가 운영하는 성형외과로 완전히 적을 옮겼다. 사용료 지불이 끊긴 후부터는 B가 무리한 의료광고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성형외과의사회에서 경고장을 받은 날 불법 의료광고 내역을 확인해본 A원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터넷 블로그에 ㄹ성형외과 이름을 버젓이 내걸어 레이저 시술 무료 쿠폰 등을 배포한 정황이 포착돼서다.

답답한 심경에 B를 찾아간 A원장은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식으로 소송을 걸었다. 못 받은 사용료가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소신을 걸고 지킨 ㄹ성형외과 브랜드의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B가 “간판을 바꾸겠다”는 확답을 보내면서 소송까지 번진 사태는 일단락됐다.

환자 빼가기는 기본…덤핑·할인에 명성 무너져

A원장이 소송을 제기한 결정적인 계기는 B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형수술을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덤핑을 했기 때문이다. ㄹ성형외과 관계자는 “덤핑은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다. 쌍커풀 60만원, 코 100만원 이런 식으로 수술을 진행했다간 수술재료나 인력 면에서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같은 ㄹ성형외과인데 지점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오해도 살 수 있어 시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A원장이 소개한 봉직의들이 B가 운영하는 성형외과로 옮기는 과정에서 A원장의 환자들을 유인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벌어졌다. 환자들로부터 “압구정에 있는 ㄹ성형외과는 없어진 줄 알았다”는 황당한 반응이 돌아왔다.

유명 성형외과에 근무하던 봉직의가 독립하면서 대표원장의 ‘뒤통수를 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버스, 인터넷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개원을 알린 강남 ㅂ성형외과 의료진이 대표적인 경우. 이들은 전원이 ㅇ성형외과 출신으로, 이를 광고에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데 주력했다.

‘ㅇ성형외과가 ㅂ성형외과로 바뀌었다’고 알리는 식으로 개원 초기 리스크를 줄였다. 멀쩡히 있던 ㅇ성형외과는 차츰 환자가 줄어 폐원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타격을 크게 입은 ㅇ성형외과가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병원 관계자는 “소송을 걸어봤자 분쟁이 진행되는 1~2년 동안 도용한 성형외과 쪽은 자리를 잡게 마련”이라며 “만만치 않은 소송비를 감당하면서까지 싸울 실익이 없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모험을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극단의 자구책도 강구하고 나섰다. ㅁ성형외과 대표원장은 봉직의가 환자 사진, 차트 등에 임의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고안, 지난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봉직의가 해당 정보를 꼭 필요로 할 경우에는 대표원장의 허가를 받은 신청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제각기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성형외과 의사들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논현동의 ㄴ성형외과 원장은 “기본적으로 성형외과 자체가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분점을 여러 개 내는 형태는 위험한 동업관계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아무리 돈이 좋아도, 의사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은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형=강남’ 공식은 옛말 “나부터 살아남자”

서울의대 선후배 사이인 ㅅ성형외과 원장과 ㄱ성형외과 원장은 공교롭게도 강남 한복판에서 같은 건물을 임대해 쓰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ㄱ성형외과 원장이 의대 선배이자 건물 터줏대감 격인 ㅅ성형외과 원장을 배려하지 않고 건물 1층을 떡하니 차지하면서부터다.

실제로 성형외과 개원가에서 ㄱ성형외과의 악명은 높은 편이다. 모 여성지에 할인 쿠폰을 뿌리고, 가슴확대수술 공동구매를 광고하는 등 의료법을 위반한 사례가 공공연히 적발돼 빈축을 샀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홈페이지에 이 병원의 구인구직 공고가 나면 “이런 성형외과는 글도 못쓰게 해야 한다”는 댓글이 올라올 정도다.

의료계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사무장병원의 비극적인 결말도 있다. 지난해 3월 성형외과전문의단체 포털사이트인 ‘성형코리아’에는 강남 ㅍ성형외과 사태가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전문 경영인과 의사가 공동 설립한 성형외과에서 잡음이 생기면서다. 법인 대표 C씨와 성형외과 전문의 D원장은 각각 출자금 30억원과 5억원을 내고 ㅍ성형외과를 설립했다. 이들은 병원의 모든 자산은 현금으로 구입하고 리스를 하지 않기로 했으며, 법인 대표는 리베이트를 받지 않고 의사는 개인수술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 기존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문제점은 곧 드러났다. C대표는 D원장이 계약을 어기고 무분별한 개인수술을 통해 이익을 챙겼다며 고소했고, 이에 그는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C대표야말로 불필요한 간섭으로 직원들을 괴롭혔다고 반박했다. D원장은 현재 해당 성형외과를 나와 ㅈ성형외과에 있으면서 법적 조정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군구별 의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구에 위치한 성형외과는 274곳인 것으로 집계된다. 한 건물에 3~4개의 성형외과가 심지어 같은 층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포화 상태이지만, ‘성형수술은 강남에서’라는 전통적인 인식으로 강남구에서의 성형외과 개원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인접한 성형외과 간 과잉 경쟁이 지속되면서 웃지 못 할 배신·분쟁 사건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박리다매식 저가정책과 무분별한 수술 경쟁으로 인한 의료사고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조성필 회장은 “예전에는 건물 안 같은 진료과 병원 하나만 차리는 게 암묵적인 예의였지만 지금은 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 가능하면 성형외과 전문의들끼리는 윤리적인 선을 지켰으면 한다”며 과대광고와 불법 이벤트가 성행하는 개원가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조 회장은 “흔히 성형외과라고 하면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성형외과를 표방한 비전문의의 개원이 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의사회가 나서 개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정부 차원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데일리메디 webmaster@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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