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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의료기관 인증평가’
[ 2011년 10월 19일 03시 20분 ]
의료기관 인증평가가 의료계의 뜨거운 화두인 것은 그동안 평가가 어렵다고 여겨졌던 병원이란 공간을 400여 항목에 이르는 폭넓은 기준을 적용,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해 낸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병원들은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반짝 벼락치기로 시험을 통과한 후 많은 부분이 인증받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 의문을 던져볼만 하다. 인증평가가 시작된 본래의 목적보다 인증을 통과하는 순간만을 향해 달리는 레이스, 그 허무함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7년, 보건의료노조는 겉모습만 변하는 인증평가 붐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4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도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단장은 “인증평가 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증평가 항목이 그 병원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는 평가 과정에서 직원들의 고충은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인증평가 과정에서 시도했던 이상적인 기준을 유지하려는 병원 측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증평가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인증평가를 여러 차례 경험한 병원 직원들은 가장 큰 이유로 “우리나라 병원 현실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인력부족이다. 인증평가 기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인력조차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JCI와 복지부 인증평가 등 총 다섯 차례의 인증과정을 경험한 간호사 A씨는 “인증기준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선 평소 인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병원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안다. 때문에 평가과정 중에만 보충인원을 투입하고 근무 시간을 늘린 뒤, 평가 기간에만 어떻게든 견뎌내라 요구한다”고 탄식했다.
평소에도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보다 높은 수준을 원하는 인증평가 기준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 병원 측이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정비해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평가만을 통과하기 위한 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임하다 보니, 인증 후 자연스럽게 원상복귀 된다는 지적이다.
간호사들은 ▲입원환자 개인별 약 포장 지급 ▲가루약 환불 처리 ▲환자기록 전산 처리 ▲약품 냉장고 청소 ▲일정 시간 후 약 복용 여부 확인 ▲이면지 사용 등을 인증평가 후 원상복귀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약국 업무는 100%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봐야 한다”면서 “병원 약국 직원들은 평가 기간 동안 주말 근무 및 야간 근무를 서며 버틴다. 그러나 평가가 끝난 후, 그들에게 이런 생활을 계속하라고 누구도 강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력부족 사례처럼 애초부터 병원의 시스템과 동떨어진 기준을 충족시키려 애쓰다가 제자리고 돌아오는 예도 있지만, 의료진 개인의 성향이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퇴원예고제이다. 퇴원예고제는 입원 환자의 담당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살핀 뒤, 간호사와 환자에게 퇴원일을 미리 알려주는 제도이다. 의사가 퇴원일을 사전에 알려주면 간호사는 환자 퇴원 절차를 차근차근 밟을 수 있고, 환자도 퇴원 후 거취를 결정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여러 인증평가에서 권장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아침 회진을 돌며 “오늘 퇴원하셔도 되겠네요”라고 환자에게 직접 전하는 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퇴원통보시스템이다. 퇴원이 통보된 시점부터 간호사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간호사는 환자가 퇴원 후 처방받을 약을 준비하고 입원할 환자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느라 허둥대고, 환자와 보호자는 퇴원 시 이용할 교통편부터 앞으로의 거취 등을 의논하느라 마음이 조급해진다.
한 대학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는 C씨는 “퇴원환자나 입원환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그날 하루 간호사와 원무과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정해진다”면서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는 부분도 갑작스럽게 진행하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인증평가 이전으로 돌아오는 또 다른 사례는 ‘손 씻기’와 ‘손 소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의료인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청결 의무 중에서도 제일 간단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인증평가 후 원위치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전언이다.
서울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F씨는 “회진을 돌면서 환자 한 명을 진찰한 뒤, 손을 씻다 보면 시간이 몇 배로 걸릴 것”이라면서 “손 씻기가 가장 간단하게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임을 알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처지에 규정대로 꼬박꼬박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병원의 인적ㆍ물적 관리 시스템이나 의료진 개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원상복귀되는 항목도 있지만, 평가를 받는 기간에도 그 기준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눈속임으로 인증평가를 통과한 항목들이 인증평가 후 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D씨는 “평가위원들의 눈을 피하려고 신입 간호사 한 명을 보초 세워두고 옷장 속에 숨어 알약을 빻아 가루약으로 만들었다. 급한 경우엔 입원실에 있는 환자의 음료수병으로 빻기도 했다”고 전했다.
간호사 E씨는 “사복을 입은 간호사가 환자의 보호자처럼 연기하기도 했다. 또 평가기관 중 담당의를 제외한 의사들은 질문을 피하고자 무조건 병원을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져 가운을 입은 채 급하게 병원 밖으로 나간 일도 있다”면서 “평가위원에게 들려줄 답변을 달달 외워 간호부장에게 시험까지 보지만 그 때 뿐이다. 평가위원 눈을 속이려 모두가 잠시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병원이 솔직하게 본연의 모습과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받아 통과하기 위해 인증평가를 활용하는 모습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병원 스스로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똑똑하게 활용하지 못한 채, 의료기관 서열화 도구로 활용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인증평가 후 많은 부분이 원상복귀 된다는 사실에 대해 의료기관 인증평가 주관 기관은 원론적인 대답을 할 뿐이다.
의료기관 인증평가원 관계자는 “인증평가 후 되돌아오는 부분에 대해 평가원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병원을 방문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추측할 뿐”이라면서 “평가원의 인증에선 어떤 사안에 대해 병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규정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가 큰 틀이기 때문에 인증등급에 모자랄 정도로 뚝 떨어지는 항목이 있더라도 인증을 철회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굉장히 포괄적인데다 진료과정에 집중되는 평가이기 때문에 허술하게 준비한 병원이라면 조사과정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면서 “많은 병원이 인증받기를 원하면서도 신청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증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민경기자 jjo@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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