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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계 나아갈 길은 통합의학"


[ 2009년 05월 03일 21시 37분 ]

지난해 한 개원의가 모 계간지에 기고한 칼럼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난다.

전문의인 그는 고교 동창회에 나갈 때마다 의사인 자신보다 더 ‘의사 같은’ 동창들 사이에서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무엇을 먹으면 암 예방에 좋고, 어떤 생활습관을 가지면 암에 잘 걸리는지 줄줄 꿰고 있는 그들의 확신 가득 찬 ‘조언’을 들을 때마다 왜곡된 건강정보로 넘쳐나는 인터넷, TV 프로그램 등의 매체가 원망스럽다는 탄식이었다.

사회가 고령화 단계에 빠르게 진입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건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질병 치료 이전에 예방 및 건강증진을 중시하는 풍토가 그것이다.

여기에 의사들이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나서 환자 중심의 포괄적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국내에 통합의학을 처음 선보인 고대 안암병원 통합의학센터 이성재 교수[사진]를 만나 통합의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들어봤다.

보완의학 or 대체의학, 통합의학 정체가 궁금하다

내 전공은 원래 소아심장질환이다. 의사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당장 필요한 약을 처방하고, 때에 따라 수술 치료를 병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의사가 해줄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진다. 환자가 평소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할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등등. 비만이나 당뇨, 심장질환은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물리적 치료에만 급급해서는 근본적인 치유가 어렵다.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이란 이에 현대의학과 더불어 정신적·사회적·영적 치료를 병행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한의학의 침술을 비롯해 식이요법, 명상과 같은 현대의학에서 도외시한 치유법이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통합의학'이다.

통합의학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

의대 학부시절을 포함해 20년을 독일에서 보냈다. 독일은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와 포괄적 의료가 일상화된 국가다. 당연히 환자들의 수요와 요구에 따라 통합의학이 보편화돼 있다.

독일에서뿐만이 아니라 최근 통합의학은 전 세계적 추세다. 미국 하버드의대나 M.D.앤더슨, 존스홉킨스대학에 가면 어렵지 않게 관련 커리큘럼이나 치료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도 환자 중심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통합의학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 7년 전부터 정착을 목적으로 학회를 발족하고 동분서주해왔다.

그간의 노력으로 전국 41개 의과대학중 약 30여 곳에 통합의학 관련 수업을 8~16시간 단위로 개설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요즘은 관련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통합의학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마다 심혈관 환자를 위한 4H(Heart-Healing-Health-Happines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NMD 출신의 식이요법 대가인 성상엽 연구교수와 함께 총 8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환자들을 위한 치유법을 알려준다.

4H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앞에서 강연하는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참가자가 운동복을 입고 직접 따라하게 한다. 요가 및 근육이완요법, 스트레스 이완을 위한 호흡법, 명상, 음악 치료 등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6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2개월 남짓 됐는데 환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수익이 목적이 아닌 만큼 한 달 교육비는 1인당 5만원에 불과하다. 코스를 이수하고 다시 참가하고 싶은 환자는 다음 달에 추가 비용 없이 또 나와도 상관없다.

프로그램당 20~25명이 참가하는데, 호응이 워낙 좋아서 다른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증설할 예정이다. 산림청과 제휴해 6월께 환자들과 함께 떠나는 1박 2일 명상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아무래도 좋은 공기 마시면서 넓은 공간에서 같이 걷고 운동하면 치유 효과가 더 좋지 않겠나.

정착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 앞으로 비전

지금은 장소와 비용 문제로 심혈관 환자에 한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다른 환자도 생활습관을 변경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이러한 치유법이 우리 의료계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검증 절차가 요구되는 만큼,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비의료인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상업적 도구로 남발하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료인과 협력해서 현대의학의 보완 목적으로 써야 함이 마땅하다.

지금이야말로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의사, 한의사, 보완대체의학 전문가들이 협력해 통합의학 구현에 매진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대의학이 의학의 주류일지라도 일부 질환에서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과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국내의 다양한 보완대체의학과 매칭시킨다면 우리 의료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