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대학병원장의 '지하철 예찬(禮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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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장의 '지하철 예찬(禮讚)'


[ 2009년 09월 20일 10시 28분 ]

여명(黎明)의 시간인 새벽 5시.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요즘엔 옷깃을 여며할 만큼 제법 쌀쌀하다. 경희대병원 장성구 병원장[사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신문 한 부를 손에 꽉 쥐고선 새벽 공기를 가른다.

이유는 하나. 평소 6시쯤 집 근처 도곡역을 나서지만, 월요일 아침 원장단 회의에 늦지 않으려면 오전 5시25분 출발하는 첫 지하철을 놓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닌 지는 꽤 됐어요. 김영삼 정부가 막 출범하고 이듬해부터였으니, 94년부터 지금껏 줄곧 지하철만 타고 다녔네요. 허~허.”

그로부터 흘러온 세월만 자그마치 15년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장 원장은 “지금은 왜 그랬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마 그 당시 월급으로는 차량 유지비조차 만만치 않아 그런 것 같다”며 어렴풋 떠오른 15년 전 자신을 회상하곤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지하철 출퇴근이 지금은 지하철 사랑으로 변했다.

“남들은 병원장쯤 되는 위치까지 올라섰으니 으레 운전기사도 고용하고 뒷좌석에 앉아 편안히 이동할 거라고 여기지만, 저는 차보다 지하철이 더 편합니다. 무엇보다 복잡한 서울 시내 교통상황에서 지하철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시간이 정확하지 않습니까.”

"사람 냄새가 좋아" 15년째 애용

옛 기억을 더듬더듬 추스르며 이야기하더니 곧 지하철 자랑으로 이어져버렸다. 물론 때로는 지하철 예찬론자인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병원장이란 위치에 비뇨기과 계통의 학회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는 처지라 하루에 외부 일정이 여러 차례 잡힌 날이면 차를 끌고 나올 수밖에 없는 때도 있지만, 개인적인 약속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어지간한 약속은 지하철과 가까운 곳에 잡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허허”

예의 그 호탕한 웃음을 또 다시 지어보이는 장 원장. 지하철의 어디가 좋은 걸까.

장 원장은 대뜸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이른 새벽이라 텅 빈 듯 보여도 지하철에서는 언제나 오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자신 역시 하루를 계획할 수도 있죠. 퇴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혼잡한 퇴근 시간 무렵에는 한가득 들어선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씨름하는 날도 많아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지하철의 매력은 바로 그 사람들이죠.”

뿐만 아니라 지하철은 장 원장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필요한 아이디어 등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블로그, 길게 보고 시작하긴 했어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특히 최근에는 블로그를 찾아주신 네티즌분들이 2만 명을 넘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모두 지하철을 타면서 생긴 버릇, 메모하는 습관이 블로그로 이어졌다고 할까요.”

지하철에서 그만의 사색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 오던 장 원장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제법 오래된 친구처럼, 또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진 지하철 사랑. 인터뷰가 끝나자 언제나 그래왔듯 장 원장은 “두 다리가 견뎌주는 한 지하철 사랑은 계속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지하철역으로 돌렸다.

마치 괴테가 같은 시간, 같은 길로만 다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