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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적기반 구축해야"
[ 2005년 09월 14일 15시 35분 ]
지난 13일 고려대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과 예방의학교실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 시술건수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태조사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건수는 무려 35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미혼모가 42%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한국사회가 낳은 병폐라고 과감히 지적한다.

14일 의원에 들어선 기자를 한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줬다. 과거에 안면이 없어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됐지만, 미리 약속을 하고 갔던터라 당장 최안나 전문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강남 차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지낸 최 전문의는 현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를 맡고 있으며, 서울 명동에서 조인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다.

최 원장을 만나 얘기한 지 5분도 채 안돼, 여성스럽다는 첫 인상은 사라지고 남성못지 않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보고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부인과를 직접 운영하면서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있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그녀의 문제제기는 그칠 줄 몰랐다.

"낙태 축소로 저출산 해결하려는 정책은 어불성설"

그녀는 우리나라가 한해에 35만명의 사생아를 발생시키는 낙태천국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꼽았다.

최 전문의는 "불과 십여년전만 해도 지금의 같은 법 하에서 정부는 출산억제책 하나로 초기낙태를 월경조절술이라고 홍보하며 국민들이 인공임신중절은 범법행위라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무시하게 되는 경향을 초래했다"며 "저출산 문제도 이미 80년대부터 전문가들이 예견했음에도 정부는 출산억제정책만 지속하다가 문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출산장려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녀는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지적하고 "이제 와서 우리사회가 도덕불감증으로 낙태 천국이라니, 개인 이기주의로 애를 안 낳는다느니 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정책을 충실히 따라온 국민들에게 정책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그녀는 "낙태와 저출산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풀어야지 낙태를 줄여 출산율을 올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러나 정부가 출산율을 올리겠다는 취지에서라도 낙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은 그동안 낙태 문제로 고뇌해온 산부인과 의사회로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회 발전을 위해 낙태문제 함께 풀어가야"

최 전문의는 "한해 35만건이라는 낙태 통계는 이 문제가 일부 타락한 여성과 부도덕한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우리사회가 함께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에 산부인과 의사회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된 것도 그동안 법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원치않는 임신으로 갈등하는 환자들과 함께 가장 현실적으로 문제점을 느끼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누구보다 이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또한 낙태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임신을 원치않는 사람들이 임신을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미혼모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규정을 신설해 줄 것도 요구했다.

특히 태아가 기형아일 경우 낙태도 불법이지만 임산부 10명 중 9명이 낙태를 선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고통 받지 않고, 차별대우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울러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펴오고 있는 정부도 하루빨리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 전문의는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이나 시술자를 범죄시하는 분위기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못하는 가에 대한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파악하고 더 이상 개개인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로 돌리지 말고 제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요양급여적용기준상 다운증후군 같은 기형아검사에 대해서는 보험적용을 해 주면서, 태아 기형으로 인한 낙태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을 대표적인 이율배반 사례로 들었다.

"낙태, 남의 문제가 아닌 내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최 전문의는 "이제는 여성계나 일반국민 모두가 낙태 문제에 대해서 쉬쉬하고만 있기보다는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고, 이를 공론화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는 '나'는 상황에 따라 낙태를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남'이 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라는 인식들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인식자체가 낙태를 드러내놓지 못하게 하면서, 낙태 촉탁모를 마치 죄인취급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미혼모, 불륜, 미성년자 임신 등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등 매스컴도 낙태에 대한 도덕불감증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에대한 사회적 시정조치도 필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최 전문의는 마지막으로 "의사들이 낙태법을 현실화시키자고 주장하면 우리사회는 의사들이 또 돈만 밝힌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번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 문제를 문제제기하고 나선 것은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의사란 직업의 가치관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낙태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임을 알고도 시술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환자의 자기 신체 결정권을 존중하고 환자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이 손상되지 않도록 의학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환자에 대한 의사의 기본적인 윤리” 라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우리는 그동안 현실과 괴리된 법 하에서 의사로서 윤리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해 왔다"며 "이번 연구결과로 실효성 있는 정부의 개선책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임신중절 실태 개선을 위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회원과 함께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재붕기자 parkjb@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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