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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환자가 웃는 그날을 위해"
[ 2005년 08월 21일 14시 14분 ]
지난 주말 제주도에서는 국제적인 혈액 관련 학술대회가 진행됐다. 한국혈우재단, 아시아 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가 공동 주관한 이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바로 혈우병의 대부로 알려진 한국혈우재단 유명철 이사장이었다. 그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통털어 가장 많은 혈우병 시술을 진행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난해한 시술법과 열악한 보험체계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기피하는 혈우병. 그는 왜 이런 혈우병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험난한 길을 자청하고 있는 것일까? 유명철 이사장은 기자의 이 같은 우문(愚問)에 다음과 같은 현답(賢答)을 들려줬다.
[편집자주]
혈우병 환자와의 첫 만남
유명철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재직 시절 심한 출혈로 생사의 위기에 처한 한 혈우병 환자를 만나게 된다.
어떻게든 환자의 목숨을 살리고 싶었던 그는 수술을 감행했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수술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후 환자의 관절이 급속히 굳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수술 전보다 심각한 상태가 돼 버린 것.
혈액응고제가 화근이었다. 당시 혈액응고제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만 응고제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알면서도 환자의 형편상 사용하지 못했던 것.
유명철 이사장은 가슴을 치며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 봤지만 어느 곳에도 답은 없었다. 그는 현실적 한계를 통감하며 혈우병을 맘 속에서 지워 버렸다.
우연히 찾아온 운명적 재회
그러나 몇년 후 봉사활동에 나선 그는 또 한 명의 혈우병 환자를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3만5000명의 환자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한 그가 국내를 통털어 1000여명의 불과한 혈우병 환자를 만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유명철 이사장은 “그때 그 환자를 만나면서 맘 속으로 혈우병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봉사활동에서 돌아온 그는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혈우병 환자들에게 미안함이라도 표하듯 열정을 다해 혈우병 환자들을 찾아내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혈우병에 대한 그의 열정은 혈우병 환자들 사이에 번져갔고 그동안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까지도 유명철 이사장을 찾아 오기에 이르렀다.
“본프레레 감독 마음, 이해합니다”
혈우병 환자들이 사이에서 유명철 이사장에 대한 인지도가 급상승 하고 있을 즈음, 혈액 응고제의 국산화에 성공한 녹십자가 사회환원 차원에서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한다.
당시 혈우병 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환자들은 재단 출범에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재단은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채 좌초 위기에 놓기에 됐고 설립 당사자인 녹십자도 골칫 덩어리로 전락한 재단에서 손을 뗐다.
여론은 주저없이 재단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유명철 이사장을 꼽았다.
유 이사장은 와해된 재단의 상황을 알면서도 혈우병 환자에 대한 자신의 운명을 회고하며 이사장 직을 수락했다.
그는 “당시 재단의 상황은 조직력을 잃고 추락해 버린 현 한국 축구의 상황과 같았다”며 “누구보다 본프레레 감독의 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
혈우병 환자가 웃는 그날을 위하여!
힘든 상황에서 재단을 맡은 유 이사장은 취임 후 쉼 없이 혈우병 환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뛰어 다녔다.
그의 노력은 혈우병 환자 약제비 지원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고 올해 난치성 질환에 혈우병이 포함되면서 큰 결실을 맺게 됐다.
어지러웠던 조직도 그의 취임 이후 안정화를 되찾아 현재는 혈우병 환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혈우병 환자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전자 검사 사업을 통한 환자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이 그가 구상하는 최우선 과제다.
또한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혈우병 특성상 정신질환을 동반하는 환자가 많아 이들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강화하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가족들과의 상담도 늘려갈 계획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혈우병 환자들의 귀속력을 높이기 위해 환자를 대상으로 직업 교육 등도 전개할 예정이다.
“혈우병 환자가 희망을 안고 맘껏 웃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나의 에너지를 올인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위기의 한국 축구를 살려낸 히딩크 감독을 연상케 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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