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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하고 싶다'
[ 2001년 05월 22일 15시 00분 ]
"그 싸움의 조력자로 나는 여기에 서 있다. 한 생명의 시작과 그 시작이 이루어지도록 역할이 부여된 여성의 몸을 지켜야 하는 현장에 마흔 해를 지나온 한 생이 서 있는 것이다. 결코 처음부터 슈바이처를 꿈꾸며 이곳을 향해 달려온 것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하여 완성한 지도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현재 산본제일산부인과에서 근무중인 산부인과 전문의 고명인(40)씨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길찾기'를 하는 사람이다.

방송국 아나운서에서 전업주부를 거쳐 산부인과 의사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는 남다른 경험 때문에 그는 지난 얼마동안 여기저기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의 삶을 엿보며 뭔가 특이한 점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나 말투에서는 '주머니를 뚫고 빠져나온 송곳'같은 개성보다는 낮게 가라앉는 침전물의 느낌이 더 강하다.

"31살에 인턴 과정을 시작해 30대 중반에 레지던트 생활을 했죠. 남들보다 10년 정도 늦은 셈이죠"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병원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를 통해 전공의 생활의 고단함을 익히 알고 있다. 30대 중반 늦깎이 여자 전공의로서 그의 고단함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지난해 12월 출간한 '나도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하고 싶다'란 책을 통해 그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동생뻘의 레지던트에게서 아이를 다루듯 하는 꾸지람을 들을 때면 '내가 이 짓을 왜 하겠다고 했을까?' 생각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전공의 수련제도에 대해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그 정도 힘든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 시행되는 수련의 제도는 처우개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개선 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진료과 가운데 왜 하필 힘들고 어렵다는 산부인과를 택했을까.

중대의대 졸업 후 서울중앙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마친 그는 이 병원 내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밝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후배 레지던트로서 같이 생활하기 힘들다는 내과 레지던트 선배들의 어이없는 우려(?) 때문에 그의 희망은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결국 차선책으로 산부인과를 택한 그는 삼성제일병원에서 성공적인 레지던트 생활을 마쳤고 결국 오늘의 산부인과 전문의 '고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의 위치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은 때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고 만족합니다. 앞으로 여성을 위한 좋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조용히 웃었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수술실에서 걸려 온 급한 전화를 받고 자신의 의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향해 휑하니 떠나갔다.

김상기기자(bus19@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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