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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와 함께 미용가위 든 원장님
[ 2007년 11월 21일 09시 47분 ]
머리를 손질해주던 미용사가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묻더니 청진기를 꺼내들고 진료를 한다? 도봉구의사회 유덕기 회장
[사진]
에게는 가능한 이야기다.
그는 2004년 이·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의사 출신 미용사는 비공식적으로 ‘1호’인 셈인데, 5번 떨어져 6번 만에 합격해 얻은 자격증이다.
“얼굴 화장도 시험과목에 있는데 눈썹 그리고 마스카라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진료실 안 의사면허증 옆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이·미용사 자격증을 가리키며 유 회장은 말했다.
그가 미용 기술을 배운 이유는 하나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에는 의료봉사를 할 때, 약을 처방해 줄 수가 없잖아요. 반쪽짜리 의료봉사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료 미용봉사단과 함께 봉사를 나간 적이 있는데, 머리 손질을 받은 환자들 얼굴이 하나같이 밝았어요. 그 때, ‘나도 배워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청진기와 미용가위를 들고 봉사에 나서지만 유 회장이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10년 동안 한결같이 무료진료를 해온 것인데, 유 회장은 이 공로로 올해 한미참의료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같은 이유로 서울시민대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가위사랑’이라는 작은 봉사단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미용봉사를 진행하거나 포천가구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의료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유 회장은 “머리 잘라주던 미용사가 의사 가운 입고 또 앉아있으니깐 환자들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머리 손질은 당장 경제적 이익을 봤다는 느낌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며 “한 번의 봉사로 정신적 치료까지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역시 기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봉사에 이토록 열심히 인 것은 병원 문턱을 더 낮추고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의사들이 ‘공공의 적’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느낄 때가 많다”며 “힘들고 실제로 개원가 사정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의 꾸준한 봉사에는 정도(正道)가 있다. 진료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정이 딱한 환자를 보면, 진료 후에 찾아가 1~2시간 말벗이 돼주면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게 그 첫째다.
“그럼 봉사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유 회장은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다. 일주일에 하루 1~2시간만 투자하면 된다”고 말한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친근해지려는 노력’만 있다면 어느덧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게되고 기다리는 ‘단골환자’가 생겨 봉사가 이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유 회장은 “봉사도 중독인 것 같다”며 “공짜를 남발하는 봉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꾸준한 봉사를 강조했다.
그는 “의사들도 양극화돼가고 또 언론 등에서는 의사를 ‘나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렇게 되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근주기자 gjlee@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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