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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훌륭한 사람 되고 싶어요"
[ 2010년 07월 01일 00시 07분 ]
소위 그는 잘난 대학생이다. 아니 그는 매우 잘난 대학생이다. 2009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 진료를 위한 사회적 기업 'FREEMED'를 창설하면서 수많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대학생 정책 자문 위원단’, ‘Bain&Company Research Assistant’ 등의 다양한 경험이 있다. 현재 연세대 의대에 재학 중인 송호원씨[사진]. 요즘 대학생들의 혈안인 스펙이 남아돌았다. 자신감이 철철 넘칠 것 같았다. 혹시 폭포처럼 쏟아질 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4학년 강의실로 안내하는 그의 첫 모습은 차분해 보였고 피곤함도 느껴졌다. FREEMED를 1년 넘게 하면서 변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변한 건 제 성격이 죽은 거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 때는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고 많은 성취를 하다 보니 제가 잠재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FREEMED를 하면서 나한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숙과 성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25살인 그는 이미 성숙해 있었고 아직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성장해 나갈 기세였다. 그 끝을 아직 알지 못하기에 그의 미래와 성장을 기대해보고 싶어졌다.

Q. FREEMED가 벌써 1년이 됐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FREEMED 활동은 별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FREEMED 버스는 여전히 토요일엔 을지로에서 일요일엔 장소를 바꿔가면서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디자인 상품 파는 일, 1000원 수술, Home visiting도 꾸준합니다.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디자인 상품을 팔고 있는데 그게 잘 팔리지 않아요. 버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돈이 필요하거든요. 처음엔 저희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그게 생각만큼 잘 안 됐어요. 그래서 기업대상 마케팅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대기업은 사원 연수 같은 때 티셔츠나 가방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디자인 상품을 기업 대상으로 판매했어요. 이런 식으로 수입 구조 변화를 주면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처음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거죠. FREEMED를 사겠다는 기업도 많았어요. 산다고 함은 지원금을 자신들이 다 대주겠다는 거였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하다가 망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하자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제약이 많을 듯해서요.

Q. 심경의 동요는 없었는지
A. 처음 시작할 때 확신하고 있던 신조는 솔직히 없었던 것 같아요. 23~24살 젊은 끓는 피로 시작했던 거지 대의명분을 갖고 시작했던 거는 아니에요. 달라진 게 있다면 저희 조직원 내부 친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FREEMED가 잘 되는 게 처음엔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우리 팀 친구들이 얼마나 만족하고 재미있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그게 가장 큰 생각의 전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직을 어떻게 이루고 이끌어나가느냐가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조직원이 어떤 동기를 갖고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뭐 이런 거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중요한지를 알게 된 거고 그래서 내부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된 거죠.

Q. 앞으로 계획
A.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할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은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을 하게 될 거예요. 그 앞으로의 일은 그때 고민하고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기도 했었는데
A. 그때 장난은 아니었는데(웃음). 제가 지금 확실히 말씀을 못 드리는 건 우리나라 네 가지 이슈인 교육, 의료, 부동산, 통일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어서예요. 그냥 영향을 크게 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거에서 올라가다 보니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생각하는 의사상
A.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의사로는 가장 멋있는 것 같아요. 슈바이처나 고(故) 이종욱 박사님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전 그분들보다 저희 아버지(서울 아산 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멋있는 것 같거든요. 프로페셔널한 일을 하는 직업에서는 탑이라는 얘기를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학문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Q. 향후 인생 희망
A.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60~70점 받아오니깐 어머니께서 ‘너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어린 나이에 그게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중학교에 와서 물리 공부를 하다가 과학에 매료됐어요. 그래서 과학 고등학교를 갔고 거기서 제 한계를 봤어요. 수학, 물리 이런 거에 있어서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과학을 못하는구나 생각을 했었고 엉덩이로 하는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생물을 공부했고 의과대학에 진학했어요. 의대에 들어와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미국 친구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 친구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보고 돌아와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구 반대편에서는 나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는 친구들이 더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깐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전 항상 지금보다는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요.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다수인데 그 친구들을 이끌고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가느냐는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고 그게 제가 추구하는 리더십이었던 것 같아요. 늘 그걸 해야 할 때가 지금인 것 같고 그 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명훈기자 hmh315@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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