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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의사의 꿈 "외과 의사이고 싶다"
[ 2010년 07월 27일 21시 52분 ]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요, 그때 저는 외과의사이고 싶습니다.”

한 때는 탈북자에서 지금은 고려대 안암병원 인턴으로, 국내 정착에 성공한 고윤송씨[사진]의 한 마디다.

조금은 어색한 서울 말씨, 인턴이라고 하기에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외모. 하지만 부드러운 눈매 아래 가려진 그의 눈동자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불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고윤송 씨는 그렇게 ‘외과의사’로서의 삶을 이야기 시작했다.

“북(北)에서는 내과와 외과 크게 두 가지로만 의사의 전공을 나눕니다. 한의학격인 북한의 고려의학이 내과쪽을 담당하면, 수술과 같은 외과 영역은 양의학이 맡는 식이죠. 문제는 이 외과의사가 북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최근 수가가 아무리 올랐다손 치더라도 아직은 젊은 의사들의 눈길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외과의사의 길을 굳이 걷겠다고 다짐한 첫 번째 이유다.

북에서도 고씨는 의사였다. 지금은 봉화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평성의과대학을 98년에 졸업한 그는 언제나 그래왔듯, ‘당’에서 정해주는 대로 내과의사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북에서는 결핵이 주요한 사회 문제 중 하나여서 그는 결핵환자를 주로 봤다고 했다.

고 씨는 “성적 등 여러 이유가 반영되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당이 필요로 하면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공이 결정되고 바뀌지도 않는다”면서 “이번만큼은 제 의지로 배우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외과의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있는 그가 외과의사를 꿈꾸는 두 번째 이유다.

언뜻 봐서도 의사로서 북에서도 엘리트 계층에 속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의 인생은 체제의 모순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한순간 틀어져버렸다.

지난 2001년 처음으로 탈북을 시도했던 고씨는 잠시 동안의 자유를 뒤로하고 이내 삼엄한 중국 공안들의 손에 붙들려 다시 북으로 압송됐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용소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술잔이 아무리 기울어져 가도 끝내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가 겪었을 고초는 매우 커 보였다.

대신에 고씨는 2년 만에 재탈북에 성공, 2003년 북한을 빠져나온 뒤 4년간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당시를 떠올렸다.

“안 해 본 일들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일들을 하며 지냈습니다. 중국어도 그때 배워 지금은 무리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고요. 다만, 의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에 무척이나 들어가고 싶었죠.”

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지난 2007년 마침내 한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확고해졌다. 입국 이듬해인 2008년 국시에서 낯선 의학용어들(주로 영어) 탓에 힘에 부쳐 낙방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꿈을 향한 끈만큼은 놓지 않았다고 했다.

고씨는 “북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한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충격은 잊지 못한다”며 “가령 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술도 그렇고, 비만과 당뇨병이란 질병이 있는지도 한국에서 와서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첫 국시에서는 아무런 사정도 몰랐기에 생화학이라든지, 약리학 등 기초과목만 죽어라 공부하기까지 했단다.

그렇게 심기일전하기를 1년, 이번에는 자신의 사정을 알고 실기시험까지 같이 준비할 수 있도록 고려대의대의 지원도 있었다. 결국 그는 재수 끝에 국시에 합격, 자신을 도와준 고려대의료원에 조심스럽게 인턴 지원 서류를 내밀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여러 과를 돌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외과 쪽에 눈길이 더욱 가더군요. 다만 흉부외과 선경 교수님이 여러모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긴 했지만, 외과를 그것도 일반외과를 전공하고픈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인턴 생활, 앞으로 5년 뒤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나면 고씨는 그렇게 갈망하던 외과전문의가 된다. 입술을 꾹 다문 그의 표정에서 외과의사를 향한 결연한 의지가 잔뜩 묻어났다.

“지금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대로 쉽지만은 않을 길임을 잘 압니다. 하지만 외과의사로서의 삶을 살기위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지요. 아직은 여러모로 서툴겠지만, 통일의 그날엔 제가 떠나왔던 고향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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