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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인턴에서 작가 레지던트로
[ 2011년 10월 15일 02시 27분 ]
서울대 불문과생에서 편입으로 입학한 의과대학, 휠체어를 탄 채 가까스로 끝낸 우여곡절의 인턴, 몇 번의 고배 끝에 입문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 일간지 논픽션 공모 수상을 통한 작가 데뷔, 시골병원에서 키워가는 의사·작가로서의 미래. 의사가 되기까지 또 된 이후 평범치 않은 과정을 밟아왔지만 의외로 그는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는 명쾌한 삶의 모토를 내놨다. 시종일관 솔직담백한 그의 모습엔 으레 짐작하는 최루성 드라마 역시 없었다.

국립부곡병원 신경정신과 류미 전공의(37)는 ‘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책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7월 2011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공모에서 ‘휠체어 인턴 병원 분투기’로 대상 없는 단독 우수상을 수상했다. 기자 생활 경험에서 비롯된 그의 문장력과 휠체어 탄 인턴이라는 남다른 소재가 세상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겪은 생생하고도 절절한 사연의 중심에는 그의 ‘발목’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사고를 당해 양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겉보기엔 표가 나지 않지만 최대한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 걷기도 30분 이상 할 수 없다. 박리성 골연골염이란 질환 탓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 인턴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통증이 매우 심해 정상적인 인턴 생활이 어려웠지만 장애등급을 받은 사람도 아니잖아요. 어디 가서 이야기 하면 꾀병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죠. 마음 고생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동기, 교육수련부장 등 ‘인복(人福)’ 덕에 휠체어를 타고 인턴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교수로부터 ‘나가라’는 소리에 밀려든 서러움과 환자·보호자와의 갈등, 자신과의 쉼 없는 싸움 등 그는 인턴 기간 내내 도전 수행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인턴 기간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어요. 교육수련부에서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에 통증으로부터는 해방됐지만 시선과의 싸움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죠. 아픈 의사가 어떻게 아픈 환자를 돌보겠느냐며 눈초리를 세우는 사람들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 여기에 제 마음에 번져 나오는 좌절감까지 더해져 마음은 늘 ‘전쟁’이었습니다.”

각 진료 과를 돌며 가까스로 마친 인턴 생활은 결국 최하위 성적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를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올법한 상황이다.

“교육수련부장님을 찾아뵀는데 너무 면목이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배려한 부장님은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격려를 해줬어요. 그제 서야 ‘아 내가 인턴을 엉망으로만 한 것이 아니구나. 그래, 인턴을 마쳤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종이(수료증) 한 장이 있고 없고가 정말 다르거든요. 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된 것이죠.”

고배 끝 정신과 레지던트 ‘합격’…논픽션 대상서 ‘우수상’

인턴 종료 후 전공의들의 인기 과 ‘정·재·영’가운데 정신과를 선택한 그는 좌절의 문턱 끝에서 경상남도 창녕군에 자리한 국립부곡병원 정신과 전공의로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정신과의 경우 의대에 편입할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몇 번의 낙방 끝에 국립부곡병원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됐죠. 일단 기계치이기도 하고 저의 문과적 감성이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몸이 불편하니까 응급이 많은 과는 사실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2차병원이나 국립병원에서의 수련을 선호, 지금의 병원이 저와 인연이 됐습니다.”

정신없는 레지던트 1년 차를 마치고 숨통이 트일 때 쯤 친구의 권유로 조선일보의 논픽션 대상 공모에 지원하기로 했다. 마감 두 달 전쯤이었기에 하루 30매 이상의 원고를 소화해야 하는 빠듯한 도전이었다.

“마감 두 달 전쯤 친구가 공모 기사를 들고 왔어요. 관심이 갔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죠. 처음에는 굉장히 막막했지만 내 얘기고 겪었던 일들이어서 그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를 위해서는 사람 얘기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 주변인들을 많이 등장시켰어요. 실명 처리를 위해 연락을 취하면서 동기들과도 다시 연이 이어지기도 했죠.”

당직이 풀리는 2년차라지만 병원 일은 항상 많아 마감 날에서야 원고 작성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퇴고 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생각지도 못한 사이 그는 ‘문장력은 최고’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함께 대상 없는 단독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작가로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큰 뜻 없이 시작한 일이 이런 결과물을 가져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뿌듯했죠. 9월 1일 ‘도전받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하지만 여러 가지 소재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에요. 다음 글이 언제 완성될진 모르겠지만 글쓰기를 완전히 놓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내가 하기에 좋은 직업”

그의 이력은 본의 아니게 화려하다. 가방 끈도 남다르게 길고 의사가 되기 전에 거쳐 온 직업도 있다. 문과에서 이과를 넘나든 대학공부 경험, 일간지 편집기자직 3년과 의사 생활까지. 사실상 진정한 사회인이란 결론이 내려진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의대 진학을 원하셨지만 의사에 대한 제 개인적 생각 때문에 저는 원하지 않았어요. 늘 바쁘고 주변을 돌볼 정신이 없는 사람이 의사라고 느꼈고 반항심도 작용했죠. 거기에 사고까지 나서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입학했어요. 결국 휴학 후 문과로 진로를 바꿔 서울대 불어불문과에 들어가 졸업을 했습니다.”

서울대 졸업 후 일간지 기자직에 도전했으나 전형의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던 등산에 발목이 잡혀 끝내 탈락했다. 이 후 다른 일간지 편집기자에 합격,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몸은 불편하지만 내부에는 활달한 에너지가 많은 저에게 편집기자 일은 무난했어요. 그렇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몸이 편치 않다보니 조직생활에서도 소극적이 됐죠.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쯤 재수하면서 잠시 품었던 정신과 의사가 생각이 났어요. 수능을 다시 보고 한 대학 의대에 응시했지만 떨어졌어요. 편입학이란 제도를 알고 난 후 가톨릭대에 본과 과정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이과, 의과대학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남들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의사라는 직업이 과연 그의 천직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 직업을 놓고 보면 저에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처음 의대를 가네 마네 하는 시절엔 가라하니 싫었죠. 의사를 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과의, 개업의, 병원 스텝 등 다 달라요. 의사라는 직업 하나로 단정짓기 힘든 부분이 있단 생각입니다. 저의 상황 모두를 고려한다면 ‘정신과 의사’는 제가 하기에 좋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의사보단 ‘정신과 의사’에 꽂혀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모교에서의 인턴 불합격’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어렵사리 레지던트 과정에 입성한 그가 바라본 현재는, 발목을 잡고 병원 화장실에서 울던 그 때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유복한 집안에 공부 잘하던 엄친딸

유복한 집안에 공부까지 곧잘 하던 이른바 엄친딸이었던 그가 공부 꽤나 하는 학생들만 간다는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또 모교병원 인턴에 떨어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는 등 인생의 굴곡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인 특목고 시절을 보내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 곳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폐함을 느끼는지 저는 잘 알아요. 또 의사가 되고 싶은데 몸이 아파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 역시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한 중·고등학생들에게 제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최근에 문득문득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픔이 중심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였단 그는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진일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몸이 아픈 의사라고 하면 보통 환자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인간인데 제 몸 아프면 짜증나죠.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 역시 짜증나 있는 상태에요. 부딪힐 수도 있지만 몸이 불편한 채로 학생 실습과 인턴을 거쳐보니 이제는 주변을 볼 수 있게 된 것같아요. 환자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주고 받기는 가능하게 된 것이죠. 부곡병원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생각보다 많은 상습 마약 환자들을 보면서 이 쪽으로 조그만 사회의식을 갖게 됐어요. 20년씩 교도소에 있었으면서도 또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인가. 구조적으로 복잡한 얘기잖아요. 이처럼 아프기 전과는 사뭇 다른 시각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언론에 이 같은 사연이 공개되면서 류미 전공의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내외적으로 일신상의 변화가 생긴 그가 다가올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담담히 전했다.

“앞으로의 각오가 사실 생각만큼 거창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글쓰기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있는 것 같아요. 환자를 심층적으로 볼수록 좋은 글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죠. 의사와 작가. 둘 다 같이 가는, 새로운 시작일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경쟁사회에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선영기자 ksy@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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