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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피기에는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지난 23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는 ‘오, 내사랑 목련화야’로 시작하는 가곡 ‘목련화’가 울려 퍼졌다.
지난 18일 숙환으로 경희의료원에서 타계한 경희대학교 설립자 겸 경희학원 학원장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의 영결식에서다. 영면한 조영식 박사는 향년 91세. 그는 경희대학교를 비롯해 경희의료원 등 12개 기관을 61년간 운영하며 교육계를 이끈 한국 사학 발전의 주역이며 ‘목련화’의 작사자로 알려져 있다.
1921년생인 고(故) 조영식 박사는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길 정도로 몸이 약했던 조영식 박사는 일제시대 징집 중 학도병을 규합해 항일 운동을 주도했으며 한 때 이러한 혐의로 수감생활도 경험했다.
해방 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조 박사는 1951년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하고 4년 만에 종합대학으로 발전시켰다.
대학병원 1000병상 시대 이끌어
“생각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고 가르친 조영식 박사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바탕으로 의료기관 설립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조 박사는 경희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1955년부터 의료원 설립을 꿈꿨지만 허가 문제로 1965년에야 당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양의학대학을 인수하며 뜻을 이뤘다.
1965년 4월 착공한 경희의료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00병상 규모로 지어졌다. 국내 대학병원이 300~500병상 규모로 운영되던 시기였다.
그는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로 의료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질병퇴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병원 규모가 현재가 아닌 미래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1971년 10월 준공식에서 조 박사는 “경희의료원을 국민에게 헌납한다”고 밝혔다.
의료장비 도입 위해 전문서적 섭렵
조영식 박사가 경희의료원 설립에 쏟은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최신 의료장비를 갖추기 위해 직접 전문서적을 구해 읽었고 미국과 일본, 유럽 병원을 방문해 최신식 의료시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의료기기의 국제시세를 직접 챙기고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도 조 박사의 몫이었다. 18층 공사현장을 하루 세 차례 이상 방문해 미흡한 점을 보완하도록 직접 지시했다.
의료원 준공 후에는 ‘교육, 연구, 진료, 봉사’를 의료원의 정체성으로 선언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현재 경희대는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약학대학, 간호과학대학, 동서의학대학원 등 6개의 의학계열 교육기관을 보유해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최고 의료기관 도약 의지…제3의학으로 이어져
조영식 박사는 의과대학 인수 전 동양의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허준의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동의수세원보 등을 읽으며 의철학(醫哲學)에 주목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독자적 발전과 함께 이 두 학문을 접목해 제3의학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는 ‘동서신의학병원’(현재 강동경희대병원) 건립과 백과사전 형태인 총 12권 분량의 동양의학대사전 발간으로 이어졌다.
조영식 박사는 70년대 대학가의 화두였던 ‘연구하는 교수,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과제를 ‘교수연구고과제도’ 도입과 충분한 실험기자재 보급, 교수들과의 끊임없는 대학교육 개선책 논의로 풀어가며 한국 사학의 발전을 선도했다.
경희대는 현재 1781병상을 보유한 2개 의료기관을 통해 연간 외래환자 200만 명, 입원환자 53만 명을 돌보고 있으며 4만8000여 건의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세계 평화의 날 대표 발의 등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강조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았던 조영식 박사는 1965년 세계대학총장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그를 붙잡기 위해 정치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교육자의 길에서만 묵묵히 활동했다.
1981년에는 UN 세계평화의 날과 세계평화의 해 제정 대표 발의자로 나서 ‘행동하는 UN’을 촉구했다. 조 박사의 대표 발의에 따라 UN은 매년 9월 셋째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로 지정하고 1982년을 세계평화의 해로 정했다.
지난 23일 엄수된 영결식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조문서한을 통해 “한국 교육사의 거목인 조영식 박사의 타계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고인이 추구한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유엔도 인류 공영이라는 목표를 공고히 하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희대 동문인 조승호 시인은 ‘지금은 천국에 목련화가 피어나는 시간’이라는 조시(弔詩)를 통해 “본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처음으로 들려주시던/ 목련화 그 노래 듣던 화창한 봄날 엊그제 같은데…”라는 말로 글귀로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한편,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학교 관계자, 국외 조문단 등이 참석했으며 고인은 직접 가꾼 캠퍼스와 경희의료원을 돌아본 후 장지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