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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유병욱 교수(가정의학과)[사진]를 만난 국제진료센터.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있다. 고향이 카메룬이라는 그를 언제 봤었나 싶게 유 교수는 “어디 가면 당신 아들 아니라고 못하겠다. 눈매도 닮았고 완전히 주니어다”라며 금세 칭찬을 쏟아낸다.
인터뷰 약속이 점심시간에 맞춰 잡힌 데다 오전 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 텐데 유 교수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밝고 힘 있는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편안함과 수많은 해외 환자를 봤던 관록이 느껴졌다.
페루 의사면허에 스페인어 통역도 가능
유병욱 교수는 2001년 베트남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2002년 라오스, 2003년 파푸아뉴기니, 2004년~2006년까지 페루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6년부터는 순천향대서울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전담교수를 맡고 있다.
올해는 불과 4달 만에 파라과이, 볼리비아, 자메이카, 페루 등 비행기를 6차례 탔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 자문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외국인 진료에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 부인도 코이카에서 만났다.
하지만 본래 봉사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곳에 봉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뜻을 품고 오는 경우도 있고, 지금도 동기 2명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나처럼 그냥 하다보니 이렇게 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웃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했지만 이뤄낸 일이 상당하다. 페루에서 진료봉사를 할 시절 익혔던 스페인어는 지난 2008년 우루과이 따바르 바스케스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전담통역을 맡는 수준이 됐다.
페루에서는 의사 면허도 취득했다. 그는 “업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간단한 필기시험 등을 거쳐 삐우라 주면허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순천향대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2010년 월 평균 약 1200명, 2011년 1300여명, 2012년에는 1500여명이 넘을 뿐 아니라 중남미 대사관 주치의도 맡고 있다. 봉사에 별다른 뜻이 없었다는 것은 겸양의 표현인 셈이다.
"의료봉사 활동 중 죽을 고비도 넘겨"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국제협력봉사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파푸아뉴기니에서 페루로 옮기게 된 데는 돈을 노린 납치범에게 피랍되 감금ㆍ폭행ㆍ살해위협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살려달라고 빌어서 겨우 빠져나왔다”며 “잘 모르면서 겁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치료 및 요양으로 6개월가량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국제진료센터에 발령받았을 때도 처음부터 환자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유 교수는 진료가방을 들고 마치 영업사원처럼 외교관 모임, 상공회의소 등을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곤 했다.
항의도 가끔 들어온다. 다인실 문화가 한 예다. 4인실, 8인실도 흔하며 가격 문제 등으로 다인실을 권하는 한국과 달리 해외는 많아야 2인실이다. 유 교수는 “다양한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 방에서 머물머 생기는 문화적 충돌이 가끔 있다”고 덧붙였다.
유병욱 교수는 앞으로 국제진료센터에 더 많은 외국인 환자가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아랍, 이슬람 사람들에게 한국 의료의 좋은 점을 알리고 소개하고 싶다”며 “향후 아랍어도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일본어에 취약한 점을 고려해 재일교포 출신 한인 의사를 영입했다. 각종 일본 커뮤니티 등에 올려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이다. 유 교수는 “외국인들이 순천향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자국 병원처럼 편하게 느끼도록 만들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훈남이란 말이 유행이다. 미남은 아닐지라도 훤칠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성격,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터뷰 도중 10분 간격으로 환자를 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틈틈이 해외봉사에 후배들까지 챙기는 유병욱 교수야말로 의료계 훈남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