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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탁구에 미쳐 시험 날짜가 다가와도 탁구장에서 나올 줄을 몰랐던 한 의대생의 이야기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도 빼먹으며 탁구를 쳤다. 친구들이 체육 특기생이라 부를 정도였다. 예과 때 탁구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성적은 당연히 바닥이었다. 그랬던 그가 현재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백혈병의 대가가 됐다. 뭔가 한번 꽂히면 무서웠던 그의 성격이 반영된 걸까. 염색체 연구의 시작 단계였던 우리나라에서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해왔다. 어느 나라도 섣불리 개발하지 못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를 우리나라에서 탄생시키기도 했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이제 탁구가 아닌 만성골수성백혈병에 목숨을 걸었다. 그의 인생의 투혼이 담긴 환자 사랑의 감동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왼쪽에서 네 번째) 연구팀 |
탁구밖에 몰랐던 청년 그리고 그를 알아본 사람들
탁구에 빠졌던 김동욱 교수가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일인자가 되기까지 그를 이끌어 준 것은 스승과 선배의 역할이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동욱 교수는 현 위치에 그를 있게 해준 인물로 김춘추 교수(現 제주한라병원 혈액내과 명예교수)와 홍대식 원장(現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을 빼놓지 않았다.
당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김춘추 교수는 김동욱 교수가 명동 성모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처음 만났다. 홍대식 원장의 경우 내과 의국장이었다.
홍대식 원장은 김동욱 교수에게 내과 전공의 지원을 제안했지만, 문제는 예과 당시 탁구에 미쳐 바닥을 쳤던 성적표였다. 그러나 다행히 본과 이후 상승 곡선을 탄 성적은 결론적으로 김 교수를 내과 전공의 과정에 무사히 입성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김 교수는 인턴 말부터 전공의 1년 차까지 내과 백혈병 팀에서 근무했다. 명동성모병원이 여의도로 이사를 간 인턴 2년 차 때, 당시 부교수였던 한 선배가 김 교수와 맥주를 마시다 혈액학을 공부해볼 것을 권유하면서, 김 교수는 전공의 시절 대부분을 염색체 분석실험으로 보냈다.
이때부터 김 교수와 백혈병과의 인연은 시작된 셈이다. 본격적인 백혈병 발생 유전자를 찾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목표가 생긴 것은 임상강사 때 일이다.
1992년 임상강사였던 김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분자생물학 강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여러 백혈병 중 그 나마 만성골수성백혈병 유전자 찾기가 수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2년 뒤 그는 막 개원한 삼성서울병원의 제의를 받고 전임의가 됐다. 딱 1년 있었다. 은사인 김춘추 교수의 부름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강력한 요청이었다. 김 교수가 성모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하나만 연구하겠다고 요구했다.
김동욱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 순간 후회돼서 연락을 두절하고 산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 만큼 김 교수의 연구에 든든한 지원자였던 삼성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끈질긴 은사의 지팡이…본격적인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
김춘추 교수의 끈질긴 제자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5년 국내 최초로 타인 골수 이식을 성공시킨 김 교수는 이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위해 1997년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소로 갔다.
김춘추 교수는 김 교수에게 있어 프레드허친슨이라는 완벽한 분자면역학 실험 연구 환경에서도 다시 성모병원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였다.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소에서 김 교수를 매혹시킨 RQ-PCR 실험 장비 등을 ‘몽땅’ 사주겠다는 은사의 한마디에 결국 고국행을 택한 것이다.
당시 김 교수는 암 유전자와 세포가 얼마나 몸 속에 있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 장비를 보고 “이게 앞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 ‘키(Key)’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흥분됐었다“고 한다.
이 때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하버드대학교에서 태동할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글리벡 전 단계 물질을 실제 실험에서 사용하자 약발이 잘 들었다는 것이 김 교수 설명이다.
약물 치료제 탄생은 ‘터닝 포인트’…정밀 진단기법 개발 목표
김 교수는 2001년 5월 글리벡이 국내에 도입되자, 첫 환자를 치료했다. 이러한 약물 치료는 골수 이식 치료방식의 빈도를 현저히 낮췄고, 김 교수가 국산 치료제 ‘슈펙트’를 개발하는데 있어 전환점이 됐다.
김 교수는 골수 이식의 시대는 이제 갈 것이라고 당시 확신했다고 한다. 결국 2003년부터 개발 연구에 들어갔던 일양약품의 슈펙트는 약 9년 만에 임상 2상을 완료하고 국내 최초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탄생했다.
현재 김 교수의 직함은 무려 6개다. ▲한국백혈병세포유전자은행 대표 ▲가톨릭대학교 분자유전학연구소 소장 ▲아시아태평양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회 위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혈액내과 교수 ▲세계만성골수성백혈병재단 이사 ▲유럽백혈병네트워크 패널위원 등 그의 이력만 보더라도 백혈병에 인생을 거는 사람임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탁구밖에 모르던 순수 청년이 백혈병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된 것이다. 앞으로의 목표도 뚜렸했다.
김동욱 교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정복을 위해 앞으로 더 분석적이고 예민한 진단기법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