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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폐기 싱가포르
[ 2012년 05월 06일 20시 00분 ]

[싱가포르 현장취재]'급격한 고령화'는 대한민국 의료제도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숙제를 내밀었다. 보건당국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의료비를 억제하고 국민이 만족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약가 인하 등 일련의 보건 정책은 의료비 억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효율성과 질 담보는 한국 의료시스템의 중대한 과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6시간 거리인 도시국가 싱가포르 공화국(이하 싱가포르)은 1984년 의료제도에 큰 변화를 줬다. 의료저축계정(MSA)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을 폐기했다. 이 제도는 국민도 의료비를 일정 부문 책임지는 효율성을 뼈대로 한다. 데일리메디는 지난 4월 26일과 27일 싱가포르 국립대(NUS) 푸아 카이 홍(Phua Kai Hong) 교수와 싱가포르 보건부 관계자를 만나 이곳의 의료제도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방향성을 점검했다.[편집자주]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독립 이후 1983년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축약되는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운영했다. 식민지 영향 탓에 독립 이후에도 한동안 영국식 제도를 유지했다. 싱가포르 국립병원 비율은 80% 내외다. 이런 시스템에 1984년 일대 변화가 찾아온다. 현재 싱가포르는 영리병원을 허용한 의료관광 대국이다.

 

효율성 강조 3Ms 제도…개인이 의료비 저축

 

싱가포르 의료제도의 핵심은 MSA(Medical Saving Accounts) 제도다. 이른바 의료저축계정이다. 제3의 의료보장 제도로 분류되는 적립기금방식이다. 개인이 소득의 일정액을 적금처럼 붓는 메디세이브(Medisave)가 뼈대다. 싱가포르 국민은 1984년 도입한 메디세이브를 통해 소득의 4% 내외를 의료비로 저축한다.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이 없어 메디세이브에 저축한 돈으로 개인이 의료비를 해결한다. 수입이 많을수록 메디세이브에 더 많은 돈을 저축한다. 가족 등에게 양도할 수 있다. 개인 의료계좌로 치료비를 부담하므로 의료쇼핑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메디쉴드(Medishield)와 메디쉴드 플러스(Mdishield Plus)는 중증의료보험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0년과 1994년 차례로 도입됐다. 민간보험 형태로 싱가포르 국민의 90% 가량이 사용하고 있다. 메디세이브로 부족한 중증 의료비나 장기입원비를 보충한다. 이 제도는 연령별로 부담하는 금액 차이가 크다. 1세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내외지만 진료비 비중이 큰 80세 이상은 100만원을 훨씬 웃돈다. 이는 지극히 효율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푸아 카이 홍 교수
경제적 여력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면 메디펀드(Medifund)를 통해 정부가 의료 서비스를 책임진다. 일종의 정부 보조금이다. 다만 메디펀드는 정부 조사를 통과해야 의료비가 나온다. 이런 3층 구조가 싱가포르 의료제도를 떠받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엘더쉴드(Eldershield)는 중증장애보험제도다. 2002년 도입됐으며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것으로 민영보험사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좋은 취지에도 제도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푸아 카이 홍 교수는 전했다.

 

푸아 카이 홍 교수는 “싱가포르 의료제도는 경제학자가 설계한 것으로 국민이 건강관리를 위해 돈을 저축하는 개념”이라며 “덕분에 조금 더 경제적으로 재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의료비에 대한)경각심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젊은 싱가포르 국민의료비, GDP 4% 수준

 

싱가포르는 2011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GDP기준)이 5만 달러에 달하는 1세계 국가다. 반면 전체 의료비가 GDP에 차지하는 비율은 4% 내외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의 1/2 내지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싱가포르는 역사가 짧은 신생국가로 전체적인 인구 구성이 매우 젊다”며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비용 투자 대비 성과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고령화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의료비가 GDP 7%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러한 수치는 1세계 국가에서는 여전히 낮지만 고령화를 고려해 다시 예산을 분석하면 2배 수준이 된다”며 “싱가포르는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성과를 거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리콴유 전 수상의 발언을 빗대 “국가의 부와 상관없이 정부 보조금이 늘어나면 세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국민이 일할 동기를 잃어버리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세금 부담보다는 생산적인 국가를 만다는 것이 낮다는 정부 지도자의 철학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싱가포르 정책이 효율성에 기울지 않았느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싱가포르는 극과 극을 만들지 않고 조화를 추구한다”며 “환자 수입에 따라 서비스가 다르지만, 정부 보조금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가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소득 따라 의료서비스 차등…정부, 고령화 주목

 

효율성을 추구하는 싱가포르 의료 제도는 소득에 따라 의료 서비스에도 차등을 준다. 싱가포르 보건부 관계자에 따르면 소득에 따라 받는 의료 서비스 질이 다소 다르다. 수입이 많으면 병실 등 시설이 다소 우수한 곳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소득에 따라 A·B·C 등의 단계로 나눠 진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다만 의료진이 제공하는 서비스 질은 거의 비슷하므로 불만이 적다고 보건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제도 초기에는 산모들이 자신의 소득군보다 높은 의료 서비스를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비 지출이 큰 데다 실질적인 서비스 수준이 비슷해 이런 현상이 줄어들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낮은 단계에서 진료를 받으면 정부 보조금이 감소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싱가포르 보건부 공무원
보건부 측은 "기본적인 공공정책은 메디세이브를 통해 개인이 의료비를 지출하고 빈곤층은 정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라며 "예산안을 작성할 때 의료 접근성과 서비스 질 등을 모두 고려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국민이 서비스를 잘 받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수익 수준에 맞게 단계를 나눠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약값에 대해선 "평균적으로 환자들이 찾는 약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그 비율이 90% 수준에 달한다"고 했다.

 

보건부 관계자는 "메디세이브을 소진해도 가족 것을 쓸 수 있고, 메디펀드를 통한 정부 보조금도 존재한다"며 "싱가포르는 다양한 의료 정보를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고령 환자의 비용 부담을 정부가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느냐"라며 "나이가 들수록 입원일수가 증가해 이를 해결하는 데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만성질환에 대해선 "전적으로 병원에 의존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해법을 찾고 있다"며 "집에서 요양하면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의료제도 명암(明暗) 그리고 한국

 

싱가포르 의료제도는 내용과 운영 방식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의료비 관리 측면에서 투자 대비 효과가 크지만, 전 국민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한국과는 정서적인 거리감이 있다. 더욱이 의료를 개인 영역으로 보는 시각은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울 듯하다.

 

메디세이브는 의료쇼핑을 막지만 합리적인 의료 서비스마저 제한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부가 메디펀드로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빈곤층의 의료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한 교포는 "싱가포르 의료제도가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돈이 없으면 치료받기 어려운 점도 많다"며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그 기준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은 메디세이브 저축 실적이 부실한 편이다. 한국 건강보험은 소득이 적은 사람은 차상위계층으로 분류해 의료비를 전액 부담해준다.  

 

푸아 카이 홍 교수는 "싱가포르는 한국과 시스템이 많이 다르며 특화된 내용이 많다"며 "완벽한 공공 정책은 없으며 시스템은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유념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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