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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5월 18일 당시 광주시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목소리를 높인 시민들이 독재자의 무력 앞에 스러져간 것이다. 피가 흐르고 비명이 들리는 참혹한 현장에서 광주 지역 의사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사람을 살리는데 혼신을 다했다.
당시 광주 지역에 펼쳐진 인술을 데일리메디가 재조명해 봤다.
반상진 원장은 전라남도의사회 김제권 전 회장과 함께 관공서나 상점은 문을 닫아도 병원은 문을 열어야 한다며 계엄사령부를 설득한 주인공이다.
당시 광주시의사회장을 맡았던 반상진 원장은 전라남도 도청 앞에 병원과 자택이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적극 개입할 수 있었다.
의사라면 진영 상관없이 진료에 집중해야
반상진 원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아픈 사람은 조건없이 치료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의사라면 이쪽 저쪽 가리지 말로 아무 제약없이 진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상진 원장은 이비인후과였지만 과목에 상관없이 응급치료를 수행했다. 처음 17~20일 까지는 폭행으로 찢어지거나 다친 환자를 봤고, 광주 MBC가 불타고 총격이 시작된 후부터는 총상 환자도 왔다.
반상진 원장은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거짓말이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경우도 있다. 군인에게 구타당하는 학생을 자신의 환자라고 말해 구해준 것이나 시민군에 잡힌 계엄군을 중상 환자라고 둘러대 시민군으로부터 풀어준 것이다.
또 반상진 원장은 대응책을 문의해온 회원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병원 문을 닫지 말고, 진료 시간을 늘리고, 진료비를 받지 말자는 것이다.
김제권 전 회장은 “환자가 오면 그냥 치료하고 내보내는 상황이라 진료비는 받을 수도 없고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며 “5.18 이후 시에서 보상해 줬지만 진료한 의사 중 대부분이 환자보호 등 이유로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의사가운 입었으면 통과
총격 등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 아래 근무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은 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 적십자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조선대병원은 군이 장악하고 있어 환자가 거의 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반상진 원장은 “수혈하고 돌아가다가 총을 맞은 사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전라남도 의사회장이던 김제권 전 회장은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김제권 신경정신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진료 대신 각 병원을 돌며 진료상황 파악, 물품 보급 등을 담당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중에도 의사가운은 효력을 발휘했다. 김재권 전 회장은 “시민군이나 계엄군 할 것 없이 의사가운을 입고 있으면 만사통과였다”며 전라북도서 지원받은 산소통 100여개를 각 병원에 나눠 줬던 일을 회상했다.
지원은 전라북도 뿐 아니라 전국 의사회에서 인력, 의약품, 성금 등 다양하게 추진됐다. 인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물품 등은 받았으며 5.18항쟁이 끝난 후 남은 성금에 의사회 기금을 모아 무등장학회가 만들어졌다.
이런 활동은 항쟁이 끝난 후 인정을 받았다. 정부와 일본의사회 등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호응이 컸다는 것에 의사들은 감격했다.
김제권 전 회장은 “5.18 이후 5년간은 의사회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사통과”였다며 “시민들이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 직업적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