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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의 현장. 1983년 10월 9일 그 무간지옥 속에 대한민국 의료의 큰 별이 졌다. 인산(仁山) 민병석 박사. 그는 대통령 주치의 업무 수행 중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순국했다.
17명 순국자 명단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 당시 고위 정부 관료들이 즐비했던 탓에 민 박사에 대한 사회적 조명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의료계는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민병석 박사는 1960~1970년대 인품과 학식으로 유명한 내과 명의(名醫)였다. 뜨거운 교육열과 인술이 몸에 베인 천품으로 동료 및 학생들의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았다.
서울의대 출신으로 가톨릭의료원에서 20여 년간 의학자와 교육자로 종신하면서 유수의 연구업적은 물론 한국 의학계 현대화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내분비내과를 전공했음에도 면역학과 신장학을 섭렵, 외과 이용각 박사와 더불어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 주역을 맡았다. 골수이식 대가인 김동집 박사(가톨릭의대 명예교수)가 그의 제자다.
세기가 낳은 거목에게 ‘국보’라는 칭송도 따랐다. 그의 명성은 청와대의 부름으로 이어졌다. 정치의 ‘정(政)’자도 몰랐던 그였지만 일국의 어의(御醫)는 어울리고도 남음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 국보에게 그런 비극의 결말이 찾아올 것을 예단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원장 임기를 마친 직후인 1983년 10월 9일 그는 이역만리 미얀마 아웅산에서 삼도천을 건넜다.
후학들에게 그의 의미가 희미하게 꺼져가던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얀마 양곤 아웅산 국립묘지를 찾았다.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이 곳을 찾은 것은 비극 발생 29년 만에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곳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없어야 한다.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순국자들의 원혼을 달랬다.
29년 전 대통령 보좌길에 나섰다 유명을 달리한 민병석 박사도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헌화와 참배에 적잖은 감회를 느꼈을테다.
민 박사의 감회는 후학들의 삶에서도 추론된다. 민병석 박사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장문의 수필에서 “의사는 지나친 금전욕 및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은 불우한 동포들이 있음을 잊지 말고 이들의 의료비 부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적었다.
실제 그는 대학병원 내과과장 시절 해외학회 참가시 입양고아를 돌보며 항공요금을 면제 받았고, 대통령 주치의 때에도 소박한 집에서 살았다.
‘
환자에 대한 기술적 구원’을 의료의 최우선 가치로 꼽았던 민 박사가 30년이 흐른 지금의 후학들에게도 동일한 당부를 할 수 있을까?
아웅산에 잠든 민 박사의 원혼이 저수가와 쌍벌제로 만신창이가 된 2012년 대한민국 의사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