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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한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이 입사 첫날부터 한달 동안 집에서 연습했다는 ‘대본’ 중 발췌 문구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고객을 만나면 늘 웃는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안면경련까지 올 지경이었다고 하소연을 한 다른 영업사원에도 그늘진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 중에는 소위 SKY로 불리는 대학 졸업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고(高)액 연봉’ 직장이라는 남다른 혜택 덕분에 힘든 부분을 참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이들도 있었다. 제약영업 환경이 거칠다보니 직속상관과의 마찰로 퇴사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고액 연봉이지만 퇴사를 결정했던 이들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연봉 7000만원 기본…대가는 강한 정신력 보통 대졸자들의 경우 직장 선택 시 고려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바로 적성, 연봉, 근무환경이다. 제약사 영업사원의 경우 실제 고객인 의사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적당 수준 이상의 지식이 필요하고 연봉도 비교적 타 직종보다 높다. 적성만 맞는다면 이 세 가지 요소 중 두 개가 충족되는 셈,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인생 설계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만은 않다.
어느 한 제약사 30대 초반 영업사원의 연봉은 올해 들어 성과급을 포함, 8000만원이 됐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온다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까. 이 영업사원의 경우 오전 7시 반 출근 뒤 곧바로 거래처로 향하고 제품에 대한 디테일(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점심도 거를 때가 많다. 그의 스케줄은 고객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후 일정까지 마무리 하면 오후 8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9시 반쯤 된다. 이때부터 편하게 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회사에 업무보고를 해야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게 된다. 이건 보통이다. 친분을 쌓기 위해 술도 한잔 걸치면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중에 거래처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따로 문서 업무도 해야 한다.
이것만이 퇴사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숨 쉴 틈 없는 바쁜 일정 속에서 내부적인 인간관계까지 나빠진다면 그 고충은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게 다른 제약사 영업소장의 말이다. 직종 특성상 그런 일은 빈번하다.
그가 수 년 동안 영업직에 몸담아 오며 바라본 영맨들의 가장 큰 퇴직 이유는 직속상관과의 불화였다. 회사 매출의 절대적 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업 일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실적이 좋지 않으면 윗선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다.
그는 “나도 과거 현장투입 영업사원이었을 때부터 퇴직한 직원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의 경우 직속상관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혼나면 굉장히 크게 혼난다. 영업시스템 자체만 봐도 개개인에게 벅찰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관계 불화까지 생기면 도저히 못 참고 나가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퇴직 사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따가운 시선이다. 영업사원보다 약 장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해 사직서를 내던지는 영맨들이 많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들의 최종 학력은 소위 SKY를 비롯해 인서울 대학교 졸업자가 상당 수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 대기업에 들어가고도 남는 스펙을 가졌다.
B사 영업소장은 “어떤 직원의 경우 주변으로부터 ‘연봉 많네~ 약은 잘 팔리냐’는 식의 비아냥 때문에 견디지 못해 퇴직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의 문제점도 고액 연봉 제약 영맨들의 퇴직 사유가 된다. 바로 고객인 의료진과의 관계에서 촉발되는 것이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업계 영업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의사 만나기 힘들 것 같다”, “영업 활동 편해지겠다” 등의 다양한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아직도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있는 몇몇 의사들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도 많다는 전언이다.
그는 “거래처와의 관계가 힘들어 사직하는 경우도 많다. 아직도 돈을 요구하는 의사들이 종종 있다”며 “영업을 하다보면 직원들이 의사 심부름을 해줘야 할 때도 생긴다. 특히 고학력 영업사원들의 경우 이러한 상황에서 괴리감을 크게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때문에 제약사 영업부는 이를 잘 견딜 수 있는 ‘거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심한 경우 왕따보다 더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왕따 문제는 제약사 영업부에서도 투영되고 있었다. 5년 차 C제약 영업사원 역시 퇴직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인간관계’였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인간관계가 퇴직을 결정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실적이 안 좋거나 거래처 관계 형성이 잘 안됐을 경우 직속상관으로부터 심한 욕을 듣는 것은 물론, 왕따보다 더한 사내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영업사원은 “내가 있는 지역 담당 영업부 직원 수십 명 중 30%가 넘는 인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에 있다. 신입 초봉이 영업활동비까지 포함해 4000만원에 가까워 일반 대기업 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인간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직 자체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심하게 대할 때는 소위 개만도 못할 정도가 된다. 왕따보다 더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사를 만나는 영업활동 자체가 힘들면 영업사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지만 이런 상황은 아무리 일이 좋아도 사직서 제출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변화, 견디기 힘들었다” 실제 퇴사한 모 제약사 영업사원의 경우 스스로 이중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참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의료진을 만나기 전 날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사전 점검을 했다. 입사 첫 날부터 “어리버리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일종의 '멘트'용 대본을 따로 만들어 외우기도 했다. 사회 첫 발을 내딛으면서 적응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살아가기에는 벅찼다는 게 그의 한숨 섞인 토로였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울고 싶을 때도 웃어야하는 광대가 되는 것 같았다. 경험은 없지만 주변에서 의사 심부름을 포함해 약 판매와 무관한 일까지 해야 할 상황도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지, 공부는 왜 했는지 돌아보게 됐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이어 “물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비롯된 애로사항을 크게 부풀려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원래 소심한 성격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제약사 영업사원 일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 거래처에 들어가기 전부터 느껴지는 심리적 압박감을 참지 못했다”며 퇴직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전반적으로 제약업계에서 ‘고(高) 스펙 고(高) 퇴사율’을 기록하고 있는 직무가 영업사원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회사는 직종 특성상 전문 지식의 인력들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 심각한 취업난도 이에 한 몫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영업사원으로 채용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 제약 영업 무대에 오른 순간 후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실질적으로 제약 영업사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지만 리베이트 쌍벌제 등이 시행되면서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정말 자기 일에 만족하면서 사는 영맨들도 있지만, 그나마 고 연봉 덕분에 견뎌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라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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