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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으로 새 날개 단 제약 3인
리베이트 등 일괄 약가인하후 제약계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
[ 2013년 04월 25일 10시 00분 ]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 프로그램)를 가동했다. 일괄 약가인하 등에 따른 ‘인원감축’ 바람이 제약업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서 직원들은 구조조정 중심에 놓여야만 했다. 특히 올 1월에는 세계 1위 제약기업인 화이자까지 희망퇴직프로그램을 시행, 업계 전체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야말로 “이제 화이자까지…”라는 놀라움과 함께 “우리 회사에도 언제 구조조정 바람이 불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이 뒤섞인 날들이었다. 회사와 노동조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시기를 보냈다. 회사는 약가인하 등으로 인한 위기로부터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인원감축을 선택했고, 노동조합은 가정과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구조조정’, ‘해고’, ‘인원감축’, 어쩌면 위기일지도 모르는 희망퇴직프로그램을 인생의 기회로 삼고, 기존과는 다른 삶의 전선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더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마무리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든 ERP 퇴직자 3인을 만났다. 이들의 모습에서는 퇴직자의 그늘보다는 새 삶을 시작하는 희망의 눈빛을 엿볼 수 있었다.

 

● “제약→유관업계, 업종변경 재취직 ”


다국적 제약회사인 A사에 근무했던 김일수(가명)씨는 내로라하는 인재들만 모인 다국적사에서 20년 이상을 일한 영업 전문가다. 그간 담당했던 제품만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김일수 씨는 오랜기간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두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급격히 변화하는 제약환경 속에서 매출은 한계가 있고, 제품 파이프라인이 빨리 진행이 안됐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남아봐야 회사에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ERP를 신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떠난 A회사는 ERP를 1회 이상 실시한 곳이었다. 첫 번째 ERP를 시행했을 때만 해도 망설였다. 퇴직금+α를 받지 않더라도 회사에 계속 남아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고,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과 같은 복지 문제도 고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로 ERP를 가동했을 때, 결심을 굳혔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트렌드와 계속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의 적응력에 속도를 맞추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희망퇴직프로그램을 통해 수억원 상당의 퇴직금을 받은 그는 무리한 투자보다는 중소기업의 영업 관리자로 재취업하는 길을 택했다. 퇴직금의 일부는 상가주택을 매입하는데 할애했다.


김일수 씨는 “퇴직한 회사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회사를 찾는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재취업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50세가 넘은 구직자를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취업에 성공한 내 나이 또래 지인들이 많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씨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 병원 납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영업 관리자로 새 날개를 달았다. 5년의 계약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이후에는 제3의 인생을 설계할 계획에 벌써 초심으로 돌아갔다.


제약업체는 아니지만, 병원 영업 시스템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재취직에 큰 장점이 됐다고 한다. 경쟁업체와 가격과 질적인 측면에서 제품을 차별화시켜 올 하반기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일수 씨는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다보니, 관계가 좋았던 지인들이 많다 해도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며 “인맥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재취업을 통해 사회 초년생 때의 포부를 되찾게 됐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온 게 아닌 만큼 겸손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일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 “한 박자 쉬면서 평소 관심 있던 일 도전”


B 제약회사에 20여년 근무했던 박대식(가명) 씨는 재무팀에서 근무했다. 박 씨는 당시 수많은 인원이 퇴사한 B사의 희망퇴직자 중 한 명이었다.


박대식 씨가 ERP를 선택한 것은 100% 자의였다고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물론,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받아들였고, 가족의 이해 하에 조기퇴직을 결정했다. 희망퇴직프로그램 우대에 따라 정해진 퇴직금보다 2~3억을 더 받은 그는 회사를 그만둔 처음 2~3개월 동안은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최적으로 끌어 올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해 생활전선에서 수십년을 고군분투 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 그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쉼’은 그야말로 달콤함과 여유로움을 안겨줬다. 모처럼의 방학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잠도 많이 자고, 좋은 음식도 먹고, 가족들과 시간도 함께 했다. 오랜 세월 몸담은 회사를 떠난 아쉬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평이다.

 

새 삶을 시작한 박 씨는 약간의 휴식기를 가진 후 평소 관심이 많았던 ‘경매’ 공부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경매를 통해 투자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리스크가 높은 자영업이나, 계약 근무 기간이 짧은 재취직은 새 삶을 준비하는 그의 선택에서 제외됐다.


건강 상태가 썩 좋은 상황이 아니기에 무리한 근무로 다시 건강이 악화되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편한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다.


그는 “처음에 쉴 때는 편안하고 좋았다. 그런데 3~4개월 정도 지나 답답함이 느껴졌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삶이 너무 무료하고, 공부를 해서 경매와 투자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낙찰도 1~2개 받아본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경매는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일단 공부를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공부를 하다가 투자에 감각이 없거나 가능성이 없다면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를 전했다. “퇴직 후 주변에서 우려를 많이 하는데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다.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시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며 현재는 다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과도기일 뿐이다.”


● “스카우트 제의로 동종업계 취직”


C제약회사 마케팅팀에서 10여 년간 일한 최미라(가명) 씨는 동종업계로 재취직해 다시 능력을 펼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오리지널 제품으로 승부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마케터는 그야말로 인재 중의 인재라고 꼽히기 때문이다.


최미라 씨는 수억의 퇴직금을 어디에 썼을까. 최 씨에 의하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일정 부분을 사용하고,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안정된 노후를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잘 나가던 마케터 최 씨는 왜 ERP를 선택했을까. C사에서 근무할 당시 더 이상 성장할 기회가 낮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위해 원하고 필요하던 직책이 있었으나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10여년이 넘는 마케팅 경력을 갖고 있었기에 퇴직을 결정했을 당시 가족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너는 좋은 회사의 경력이 있으니까 어디든 취직할 수 있을 거다”라고 했지만 이직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쉽게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사실 C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바로 할 생각은 없었다는 그는 “원래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며 “자기계발을 위해 해외연수도 가고 여러 경험을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타 제약회사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애초 계획했던 일들이 있어 다시 사회에 뛰어드는 것에 망설임도 컸다. 그러나 입사한 새 직장에서 더 큰 비전을 보여줬기에 그는 결국 동종업계 이직을 선택했다.   


최미라 씨가 새로 둥지를 튼 회사는 퇴직한 C사보다 규모가 작다. 국내에 정착한지 오래 되지 않아 세팅단계에 있다고 봐도 무관한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최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회사가 정착되는 단계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지금까지의 경험과 경력이 새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아울러 “ERP를 통해 회사를 잠깐 쉬면서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설계할 수 있었다”며 “새 직장에 적응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다. 후회 없이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을 마쳤다.

이슬기기자 ls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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