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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술 취한 승객이 시내버스 기사를 폭행한다. 이 경우 단순폭력이 아니라 특정범죄로 가중처벌돼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승객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가 승객 의 안전을 책임지듯 환자 생명을 책임지는 의료진도 응급실이라는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 기사에 비유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응급실 폭력 등은 ‘응급의료 관한 법’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법에 따라 처벌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럴수록 의료진의 기대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번엔 제발 끊어내자”는 의료계의 바람은 속절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지난 8월 서울 강북구에서 마을버스 기사가 느닷없이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버스가 인도로 돌진했다. 20대 남자가 기사에게 시비를 건 후 머리를 때린 것은 물론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댄 탓이다. 이 남자는 정류장도 아닌 곳에 버스를 세우라고 요구하다 기사를 폭행했다. 이 때문에 버스는 가드레일을 뚫고 인도로 돌진한 뒤 상가와 정면으로 부딪칠 뻔 했다.
버스 기사 김모(56세)씨는 “가해자가 명백한데도 경찰은 왠지 사건 처리를 미뤘다”며 “결국 가해자는 창문을 열고 달아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만약 반대쪽으로 들이받았다면 10m 아래로 떨어져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버스 기사는 “자신조차 경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피해가 경미하고 또 나중에 합의도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저런 면 때문에 좀 기다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연속해서 벌어지기 때문일까. 운전 중에 발생한 대중교통 운전자 폭행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2008년부터 가중 처벌 대상이 된다. 현행법은 운전 중인 버스기사를 때리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일반 폭행죄와 달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으로 엄하게 처벌한다. 이외에도 정부는 투명 보호벽과 폐쇄회로화면(CCTV)을 설치하는 등 안전 대책을 세웠다.
버스 및 택시기사와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교통 운전자를 갑자기 폭행, 협박해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은 지난 2008년 부터 시행됐다.
특히 운전자에게 해를 입힌 경우에는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해지며, 사망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이 발의할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었으나 형량이 가볍다는 버스업계의 강력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특가법으로 대체되는 등 규정이 크게 강화됐다.
물론 근본적으로 문제가 뿌리 뽑힌 것은 아니다. 버스기사 김씨는 “말 그래도 현실은 허점투성이다. 특가법은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하는 경우에 한정하고, 정차 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수년 전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주취자 처리에 대한 구호조치’ 조항(제4조)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 당시 의료계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정 회장은 “경찰 선에서 제압되지 않는 주취자를 공권력도 없는 의료기관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으로 너무나 어이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폭력을 당한 응급실 의사 및 간호사는 최소 두 달 이상은 후유증을 겪는다. 행여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라도 출두할라치면 몇 안 되는 인력도 공백이 생겨 응급실 자체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눈물짓는 의사들 “응급실 폭력, 엄중 처벌 위한 법 필요”
지난 8월 초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5개 의료단체는 일산 피부과 병원에서의 살인 미수 사건과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취객이 의자로 의사의 머리를 찍어 내리는 영상을 그대로 접했다.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성명을 통해 “환자는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를, 의료인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환경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의사의 90% 이상이 진료 공간에서의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폭력은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행위를 현저히 위축시키고, 다른 환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의료 시설을 파괴하는 등 응급진료를 방해하는 자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조항을 경검찰이 엄격히 준용해 달라고 촉구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정성필 교수는 “이러한 일이 자주 발생할수록 응급실 근무를 열성적으로 할 수 없게 되며 환자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몇 십 년 째 표류하고 있는 응급실 폭력에 대한 엄중 처벌이 이뤄질 수 있는 법 개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醫, 국회 설득 등 의료인 폭행방지법 제정 속도
주변 상황이 녹록치만 않지만 다행히 의료계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국회와의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 바로 경기도의사회다. 경기도의사회 조인성 회장은 “의사는 물론, 간호사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 등에 대한 폭행을 금지하는 의료인 폭행방지법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의원입법을 통해 반드시 의료인 폭행방지법 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의료인 폭행방지법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환자, 보호자 등 일반인에 대한 폭행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응급의료 개선위원회’를 열고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발전적인 제안을 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조인성 회장은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실과 공동으로 응급의료법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고 복지부에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며 “입법예고 중인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 국회, 의료전문가들이 모여 소통하는 응급의료 개선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회장은 “진료 중 협박, 위계, 위력 등의 방법을 이용한 방해와 의료인에 대한 폭행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돼서는 안 된다”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중앙회 회장들도 병원 내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선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전공의, 공보의들은 누구보다 가중처벌법 제정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제18대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해 수포로 돌아가자 큰 기대를 걸었던 젊은 의사들은 고개를 떨군 바 있다.
조인성 회장은 “전공의들의 경우 의료계 안에서도 최약자로 보면된다. 지금도 전공의들이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자료를 모으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을 길이 없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 다시 상정돼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장성인 회장도 “안정적인 진료 환경과 환자 건강권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법의 보호가 절실하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 관련 법안 입법화와 행정적 지원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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