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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4]부산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 근무 중인 한 수련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서울에서 피부과를 운영 중이 개원의가 진료실에서 시술에 불만을 품은 환자의 칼부림에 수차례 찔려 병원에 후송됐다. 국립 경찰병원 한 인턴 여의사는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대학생에게 의료기구를 빼앗기고 배를 발로 걷어차이는 봉변을 당했다.
또 응급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가 의자로 의사 얼굴을 가격하고 집기를 던지며 난동을 부리는 CCTV 녹화 영상이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지난 7월부터 단 두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면 의료인 폭행의 심각성은 더할 것이다.
이에 의료계는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화에 다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의료계 숙원인 의료인 폭행 방지법. 이는 지난 17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돼왔지만 계속 좌초,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도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계류 중인 상태다.
입법화 논의 시작은 제17대 국회 때 정부가 발의한 의료법 전부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에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를 폭행·협박하는 행위 ▲의료기기 등 의료기관의 시설을 파괴·손괴하는 행위 ▲의료기관을 점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회기만료,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는 2008년 11월 새누리당 임두성 의원과 2009년 12월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를 폭행·협박해 의료행위를 방해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 처음으로 국회에서 본격 논의됐다.
당시 비뇨기과 의사가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외래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하고 뒤이어 의사가 진료에 불만을 품은 40대 환자에게 흉기로 수차례 찔리자 입법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크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의사특혜법 논란’이 제기되며 통과되지 못했다. 다만 응급의료 분야에 대해 응급의료 관련법을 개정해 응급환자를 진료 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등 금지 규정을 명확히 하는 것이 그나마 의료계가 얻은 소득이었다.
논의 당시 의료인 폭행 방지법 입법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세 가지로 정리됐다. ▲다른 법률에 따른 폭행·협박 범죄자와의 형평성 문제 ▲의사에 대한 특혜 논란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를 폭행·협박한 경우 형법에 따라 폭행죄, 협박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된다. 형법에서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형법으로 의료기관 내 폭력 행위를 폭행죄나 상해죄 또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왜 의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처벌 규정을 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의료인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만나 유사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직군이 많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한의사 등은 물론이고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분야의 직능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만일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다른 전문직군의 유사한 입법 요구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형평성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될 수 있는 이유다.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시민·환자단체 반발이다. 이들은 의료계가 의료법 개정에 나서는 것에 “환자와 가족들까지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련법이 ‘의사’만을 보호하고 있는 만큼 그 처벌도 ‘환자·보호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관련법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처벌되는 비(非)반의사불법죄인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인 폭행 방지법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해야 해야 하는 법”이라고 정의할 정도다.
19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12월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앞서 언급한 법안과 처벌 수위가 같은 법안을 발의,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8대 때 논의됐던 법안과 비교해 보면, 법 적용 대상에서 의료기간 종사자를 뺀 것 말고는 그대로다.
즉, 18대 때의 쟁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19대 국회에서는 아직 관련법이 논의된 바 없다. 향후 논의 가능성도 아직 불투명하다. 법안을 발의한 이학영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복지위로 합류하며 정무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이학영의원실은 “더 이상 복지위가 아니기 때문에 향후 법안 처리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법안 발의에 함께해주신 많은 의원님들이 힘을 모아주실 것이다”라고 전했다. 공동발의자 중 복지위 소속 의원은 김명연, 김성주, 김희국, 문정림, 신경림, 신의진, 양승조, 오제세, 이목희 의원 등 총 9명이다.
보통 법안소위원회 상정 법안은 각 위원의 의견을 취합해 각 당 간사와 복지부가 협의해 정한다. 현재 새누리당 간사는 유재중 의원, 민주당 간사는 이목희 의원. 이 두 간사실은 의료인 폭행 방지법 심의 가능성을 두고 하나같이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소위 개회가 확실시 된 후에 상정 안건에 대해 협의하기 때문에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이들은 상정 가능성에 대해 “논의에 대한 위원들, 또 국민들의 요구가 있다면 당연히 상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등으로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이 정기국회 개원 54일 만에 복귀하며 국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논의될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의료계가 의료인 폭행 방지법 실현화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진 각오를 다진 만큼 희망을 버리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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