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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네르구이이고 6살입니다.” 이름을 묻자 또박또박 한국말로 답한 이 소년은 몽골의 한 시골아이다.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할 만큼 네르구이는 오랜 기간 국내 한 병원 입원실에 머물렀다. 지난 4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코’가 없이 태어났다.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이런 경우 태어난지 1년 이내 사망하지만, 네르구이는 기적처럼 지금껏 살아왔다. 그리고 네르구이는 6살이 되는 올해 봄,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국제의료협회 및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의 ‘나눔의료사업’ 도움을 받은 첫 환자가 됐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도 흔쾌히 치료에 나서기로 했고, 수술은 성공했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나 ‘뽀로로’ 인형을 손에 꼭 쥔 네르구이는 엄마와 함께 지난 25일 고국 몽골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몽골 속담처럼 이날 공항에 내린 비는 네르구이와 엄마에게 큰 선물이었다.[편집자주]
네르구이는 조그만 두 다리로 달려가 서울성모병원 성형외과 이종원 교수에게 안겼다. 어린아이지만 만남 뒤 찾아오는 헤어짐을 아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바라 본 병원 진료팀과 진흥원, 월드비전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네르구이와 이종원 교수 |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 환송회가 열린 병원 로비에서 승기배 병원장은 네르구이에게 이종원 교수를 가리키며 ‘큰 아빠’라 칭했다. 그 정도로 사람 좋기로 유명한 이종원 교수였기에 그는 네르구이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네르구이의 진단명은 선천성 안면기형이다. 코로 숨을 쉬기 위해선 비강과 기도 등이 코와 연결이 돼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었다. 오로지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세계적으로 30례 이내로 수술 건수 역시 몇 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약 1억원의 모든 병원 비용을 지불하기로 결정한 서울성모병원은 4월 9일 네르구이의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약 일주일동안의 검사는 성형외과를 비롯해 안과,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치과 등 8개 과의 협진으로 이뤄졌다.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하는 상황이었다.
4월 17일과 7월 3일 1, 2차 수술이 진행됐다. 조직 확장기 삽입술부터 비강 점막 및 외비 형태 재건술까지 진행하며 이종원 교수를 필두로 병원 교수팀은 마침내 네르구이의 코를 만들어냈다.
네르구이는 원래 코가 없었기 때문에 새 ‘피부’가 필요했다. 이종원 교수는 식염수를 주입해 네르구이의 늘어난 이마 피부를 이용했다. 코뼈는 늑골 하나로 사용했다. 비강, 기도를 만들어내는 건 이비인후과에서 진행했다.
하지만 협착이 문제였다. 뚫어 놓은 구멍이 원래 형태로 돌아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콧속에 지지대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상업용 지지대를 사용하자니 소품종 대량생산에 최적화돼 있어 이종원 교수 눈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최근 신기술인 3D 프린팅 기술(서울성모병원 - 포스텍 공동연구)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 기술은 어떤 복합한 형상도 제한없이 제작이 가능해 맞춤형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때문에 네르구이만을 위한 지지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上 자료 서울성모병원 제공]
이종원 교수는 “코가 없었기 때문에 기도를 재건하는게 1차 목표였다. 그리고 겉모양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굉장히 복합한 수술이 진행됐다. 앞으로 몇 번의 수술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워낙 활달한 아이라서 정이 많이 들었다. 수술로 도움을 줬다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네르구이 때문에 배운게 많았다. 환자들 역시 이 아이 덕분에 질환 극복의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7개월 동안 함께 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병원 정문 앞에 마련된 차를 탔다. 네르구이는 문 앞에 서 있는 병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고개를 숙여 흘린 한 직원의 눈물은 그들이 나눴던 ‘정’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7개월 동안 키도 많이 자라, 병원 측이 직접 매장에 고른 겨울옷을 입은 네르구이의 손에는 여전히 뽀로로 인형이 떠나질 않았다. 네르구이의 엄마 도그스무 씨도 만감이 교차한 모습이었다.
▲네르구이와 엄마 도그스무 씨 |
도그스무 씨는 “몽골에선 비가 내리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앞으로 교수님이 재수술을 위해 오라고 하시면 그 때 다시 오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천진한 네르구이 역시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무언가가 있었다. 앞으로 자신과 같은 환자를 고쳐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몽골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 네르구이는 “나중에 커서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