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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누구보다 특별한 환경에서 보낸 의사가 있다. 의과대학 졸업 후 남극이라는 극지에서 임상 경험을 쌓은 정진호 공중보건의사[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해 12월 세종기지에 입성해 월동연구대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로부터 지난 1년간의 극지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진호 의사는 2011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공중보건의사에 지원해 세종과학기지 26차 월동연구대로서 복무 중이다. 월동대는 약 13개월을 세종기지에서 근무하는데 12월 16일까지가 정식 활동기간이다.
정진호 의사는 “의과대학 재학 시절부터 여행가는 것을 좋아했다”며 “세종기지에서 18차 의사로 활동한 강남세브란스병원 홍종원 교수의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극지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이나 주변 지인들을 통해 관련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세종기지에 대한 마음이 커졌고 결국 졸업과 동시에 공중보건의사로 지원하게 됐다.
그는 “사실상 남극에 가보고 싶어서 공보의를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남극은 평범한 여행으로는 방문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세종기지 월동연구대 의사는 기본적으로 대원들의 진료와 건강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환자 발생시 처치와 더불어 정기 건강검진, 질병 예방, 식품위생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한정적 인원으로 인해 세종기지의 공동 작업 및 주방 일에도 손을 보태기도 한다.
정진호 의사는 “근무시간은 기본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업무 특성 상 근무시간 외에도 환자가 발생하면 당연히 진료를 본다”면서 “국내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비해 환자 수가 적어 진료 자체는 많은 편이 아니나 설문조사, 보고서 등 행정업무들이 꽤 있다”고 소개했다.
세종기지내 유일한 의사…아찔 체험 여러번
▲남극 세종기지 앞에서. | 한정적인 공간 속에서 일상적인 생활이 반복될 것 세종기지지만 사건사고의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집단 감염성 설사가 발생하거나 겨울스포츠에 따른 부상자들이 그런 경우다.
그는 “작년에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집단으로 감영성 설사가 발생했다. 날계란에 의한 살모넬라 감염이 의심됐다. 국내라면 처치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본인도 고열과 설사를 앓고 있는 가운데 기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항생제와 수액까지 한정적이어서 환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또 “남극의 겨울인 7월에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인대가 손상된 대원도 있었다”며 “기지 내에는 엑스레이가 없어 근처 러시아 기지를 방문해 촬영을 해야 했다. 겨울이라 기상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며칠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부터 극지연구소를 통해 국내 의료진과 신속한 연계가 가능한 ‘극지의료지원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극지의료지원시스템 덕분에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들의 자문을 빠르게 얻어 환자 처치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알렸다.
특히 중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혼자 판단하고 처치해야 한다는 점은 가장 큰 어려움이자 극복해야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국내와는 달리 중환자들은 칠레의 3차 병원까지 후송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며 “아직 임상 경험이 많지 않아 급작스러운 사고나 환자가 발생했을 때 빠른 판단과 처치를 하는데 미숙한 부분이 있다. 다행히 극지의료지원시스템이 이러한 부담을 많이 줄여줬다”고 언급했다.
“의사로서 자신감 부족하다는거 느끼게 해 준 남극”
자칫 외롭고 답답할 수 있는 극지에서의 하루하루도 대원들과의 공동생활과 남극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좋은 벗이자 위로가 돼 줬다.
▲연구원의 협조로 마취 시술 중. | 정진호 의사는 “저녁 식사 후에는 주로 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영화를 보고 당구를 치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도 한다. 무려 스크린 골프장도 갖춰져 있다”면서 “도서관에 책들도 많아 개인적으로 독서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주말에 날씨가 좋을 때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 기지 주변 봉우리들을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펭귄마을에 가서 펭귄들을 보고 오기도 한다. 할 일이 없어 무료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생활에서의 어렵고 불편한 점이라면 환경적 요인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다. 그는 “동절기의 경우 해가 떠 있는 시간이 매우 짧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 많아 실내에 갇혀 있어야 한다. 또 가족과 친구들과 1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점 또한 아쉬움”이라고 피력했다.
이제 세종기지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정진호 의사에게 2013년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특수 환경 자체도 그렇지만 극지에서의 임상 경험은 자신감과 부족함 모두를 깨우쳐줬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로서 혼자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또 반대로 부족함을 많이 깨달았다”며 “한 사람의 의사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 공보의 복무가 끝나면 전문의 수련을 받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1년이 넘는 남극에서의 생활은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게 해 준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진호 의사는 “전공은 아직 고민 중이지만 남극처럼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전공을 알아보고 있다”면서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방면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자 한다”며 다가오는 새해를 기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