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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눈높이가 같아야 한다. 하루 시간을 내 청소하고 선물을 건네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진정한 봉사라고 보기 어렵다.
일회성 봉사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방법이 틀리면 받는 이에게 상처를 준다. 그래서 봉사는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강남북부지사 이희선 과장이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깨달은 법칙이다.
이선희 과장은 평일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주말에는 어김없이 가위를 잡는다.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 배운 이미용기술 덕분이다. 오랜 기간 봉사하고 체계적인 도움을 주려면 특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이미용기술이다. 평생 펜을 잡은 손에 가위질은 익숙하지 않았다.
재능기부 초창기에는 많은 이들의 귀에 상처를 냈다. 가위질이 무서워 봉사를 포기하고 싶어도 반갑게 맞아준 분들이 고마워서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상처로 남은 기억이 있다.
"경로당에서 이발봉사를 하다가 한 어르신의 귀에 상처를 냈어요. 다음에 뵌 어르신은 붕대를 칭칭 매고 있었죠. 그분의 아들이 이를 문제 삼았고, 결국 파출소까지 가게 됐습니다. 합의금을 드리고 해결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제가 이미용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운 계기이기도 합니다"
두 아들이 있는 이 과장은 봉사 덕분에 새로운 아들이 생겼다. 그가 주로 봉사하는 '브리엘의 집(서울 구로동)'에 거주하는 혜성이를 보면 기운이 절로 난다. 혜성이는 대학생 나이인데도 지능은 다섯 살 정도다.
나이에 비해 미숙하지만 마음은 수정처럼 맑다. 반갑게 반겨주는 혜성이를 볼 때마다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봉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기부만 하겠다는 생각이 커져 후원회장까지 맡게 됐다. 큰돈은 아니지만 십시일반 도움을 주는 직장 동료들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브리엘의 집 원장님과 인사를 나는 건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약 2년이 흐른 후였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내심 섭섭했지만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원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사랑이에요. 사람이 그리운 거죠. 계속 오지 않을 분들이 과한 애정을 쏟으면 되레 원생들에 상처가 돼요. 원장님도 저를 처음 봤을 때 그 점을 걱정하신 겁니다"
이 과장은 봉사를 통해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봉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한발 비켜있던 아내가 신뢰를 보낸다. 공부도 좋지만 두 아들이 따뜻한 품성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주는 거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와 같이 봉사활동에 나서는 가족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집안 살림도 봉사를 시작하면서 좋아졌다. 정말 신기했다.
그는 평범한 50대 가장이지만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봉사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은퇴 후 인도네시아로 가 한글을 가르치고 틈틈이 이발봉사에 나설 계획이다. 단국대학교 국문과 출신인 그는 최근 교사자격증을 땄다. 해외봉사를 위한 준비과정이다.
이 과장이 인도네시아를 택한 건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한국인이 봉사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몇 차례 자비를 들여 다녀온 해외봉사를 통해 은퇴 후 계획을 세운 것이다.
또 하나의 꿈은 나눔강의 활성화다. 그는 "자신의 봉사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봉사도 결국 정보가 많아야 도움이 극대화된다. 시간을 쪼개 복지관이나 교회를 돌아다니며 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봉사를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봉사는 절대자가 준 선물이에요. 걱정이 없어지고, 더 많은 것을 얻어가죠. 봉사가 어렵다고요? 답은 간단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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