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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사→경영자 변신 성공위해 매진
‘파란만장’이 제격이겠다. 그렇다고 운명에 휘둘린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스스로 개척한 삶이었다. 평탄히 살만한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에게 현실과의 타협은 용납되지 않았다. 개척으로 일관된 삶의 족적은 그의 다양한 이력에도 잘 묻어난다. 남들은 하나도 어렵다는 직업군을 그는 너무도 쉽게 넘나 들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결코 포기는 없었다. 간호사를 시작으로 의사를 거쳐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서초요양병원 이재숙 원장의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대 나온 여자
그는 소위 ‘이대 나온 여자’다. 1969년 여성 사학의 상징인 이화여자대학교, 그것도 간호대학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전형적인 여성으로의 삶이 예견됐다.
4년제 간호대학이 전국에 6개 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이화여대 간호학과 출신이니 의료 현장은 물론 강단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이 넓었다.
하지만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는 1972년 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졸업 후 모교 병원에 근무하는게 당시의 관례였지만 그는 조직의 통념을 깨고 한양대학교병원을 택했다.
병원에서 1년 간 임상 경험을 쌓은 이재숙 원장은 주변의 권유로 병실 대신 강단에 섰다. 한양대학교 간호학과 전임강사로 전격 발탁,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학생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고, 교수들도 그의 존재감을 인정하며 학교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던 1975년 이재숙 원장은 돌연 미국 유학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났다. 조직 내에서 학연과 지연으로 아웅다웅하는 문화에 염증을 느낀 탓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 현실이 재미없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넓은 무대에서 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에 이끌려 유학을 결심했다”고 술회했다.
한국으로의 역유학
미국에서의 삶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5년 여의 시간 동안 전공을 세 번이나 바꿨다. 10대에 겪어야 했던 질풍노도(疾風怒濤)를 그는 20대에 느끼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UCLA에서 정신간호학 대학원이었다. 전문성을 갖춘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심했다. 간호학의 한계도 절감해야 했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주임교수가 병원경영 전공을 권했다. 역동적인 성격과 비상한 두뇌는 간호학 보다 오히려 경영이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렇게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했고, 그 곳에서 병원경영과 병원행정 등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 교수의 권유대로 나름 적성에도 맞았다.
신학문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주임교수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이제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겸비했으니 의사가 돼 보는게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마침 기회도 좋았다. 한국이 선진국과의 인적교류를 한창 추진하고 있었던 탓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그를 모국 의과대학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말 그대로 ‘역유학’이었다. 학교는 고려대학교를 선택했다. 시대 정황상 무시험 입학도 가능했지만 그는 ‘특혜’가 싫어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입학했다.
80학번 새내기. 띠동갑 동기들과 의대시절 6년을 함께 보냈다. 만학도, 그것도 간호사 출신의 유학파란 티를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이재숙 원장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동기들의 도움으로 잘 견뎌낼 수 있었다”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의사 그리고 경영자
1년 간의 인턴을 마치고 그가 택한 전공은 진단검사의학이었다. 당시 교수 인원이 넉넉지 않아 학교에 남으면 교육자의 길이 보장돼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도전’이었다.
1991년 박사과정 상태에서 전문의 취득과 동시에 개업했다. 미국에서 병원경영을 공부한 내공을 살려 건강검진센터를 열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하지만 대학병원들이 앞다퉈 검진시장에 뛰어들면서 바로 접어야 했다. 이어 내과와 소아과 등을 잇따라 개원하며 성공가도를 이어갔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요양병원 운영의 꿈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참으로 가혹한 시간들이었다. “실패와 좌절의 아픔이 더욱 성숙케했다”고 이재숙 원장은 회고했다.
너무 대찬 삶에 힘겨움 마저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에게 2003년 결혼한 지금의 남편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켜준 은인이었다.
이재숙 원장은 미국 MBA 대학원을 졸업한 남편과 합심해 지난 2008년 60병상 규모의 서초요양병원을 개원했다. 당초 계획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내실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간호사와 의사’ 두 직역을 아우르는 이력을 통해 직접 교육을 담당했고, 최상의 효율성을 지향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여기에 뇌졸중과 파킨슨 전문 요양병원이라는 무기까지 장착했다.
이재숙 원장은 “쉼 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육십갑자도 돌아갔다”며 “이제는 도전보다 감사와 배려, 위로에 기반한 삶을 살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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