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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철학자들은 토론 시간 대부분 ‘단어’를 정의하는데 쓴다고 한다. 하긴 내가 ‘A’라는 의미로 선택한 단어를 상대가 ‘B’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그 대화는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서로 다른 학제에 속한 전문가들의 소통에서 걸림돌로 종종 관찰된다.
철수가 컵을 위에서 바라보고 생각했다. “컵은 동그랗게 생긴 물건이구나.” 영희는 컵을 옆에서 바라보고 생각했다. “컵은 네모나게 생긴 물건이구나.”
둘이 만나서 대화를 시작한다. 철수가 영희에게 컵은 동그랗다고 얘기하자, 영희는 철수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눈으로 분명히 컵을 봤고 그것은 네모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철수도 분명한 사실을 얘기하는데 영희가 반대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간혹 딸깍발이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의 확신을 위해 목숨을 걸기고 한다. ‘상대의 비정상’을 ‘나의 정상’으로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의학은 과학의 일부인가 아니면 과학이 의학의 일부인가. 그렇다. 둘 다 맞다.
우리는 2차원의 평면적 사고를 벗어나 3차원 입체 사고를 구조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의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차원에 위치하면서 많은 부분 교집합 영역을 공유하는 상호보완적인 학문이다.
의료의 본질은 인류를 건강하게(삶의 질) 하고 오래(삶의 양) 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는 의사들만의 몫이 절대 아니다. 법률적으로 협의의 의미에서 의료 행위는 의료인들만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의(廣義)에서 의료의 가치사슬은 기초연구자로부터 출발한다. 임상의학자들은 가치사슬의 후반, 즉 실용화 과정의 끝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동안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만 매진하고 있던 것이 국가 연구개발 투자에서 HT 분야의 산업화 성과가 부진했던 이유로 거론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HT 산업은 국민을 먹여 살릴 차세대 경제성장 동력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모든 정부부처가 HT 연구개발에 예산투자를 늘리면서 많은 연구개발 업에 의사들의 참여를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제 의사들은 몸이 아플 때 찾아가는 주치의로서만이 아닌 국민을 위한 연구개발 및 비즈니스 파트너로 위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HT 분야의 연구투자 평가에서 산업화 혹은 실용화 성과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의료에는 보건의료 산업화 요소 외에도 사회보장적인 복지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연구개발이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신산업 창출이다. 이는 보건과 복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복지 영역의 연구개발 사업을 예로 들면, 희귀난치성 질환극복이나 국가 재난형 감염병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영역은 민간이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아울러 HT 산업의 대표적인 약물, 유전체, 줄기세포, 의료기기들은 인체에 사용되는 제품들이기에 허가 전 반드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인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는 단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이를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고 부를 정도다. 특히 임상시험은 피험자 안전과 이익이 최우선 돼야 한다. 임상시험의 최대 수혜자가 기업이나 병원이 돼서는 안 된다.
국가의 보건의료 연구개발 투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는 무엇일까.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에서는 충분히 유념해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이를 토대로 국정감사 질의를 구상해 줄 것으로 믿는다. 집안일에서 나랏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정치’ 아닌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