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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시발점도 가늠하기 어려운 이 단어가 의료계에 식지 않는 화두가 된지 오래다. 새정권이 들어서거나 새정책이 발표되면 어김없이 민영화 진통은 되풀이 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원격의료법과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투자활성화 대책 등을 내놓으며 논란의 강도가 더욱 짙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아이러니 한 점은 논란이 성립되려면 찬반이 있기 마련이지만 민영화 논란에는 ‘반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돈이 생명보다 우선시 된다는 괴담 속에도, 정부의 정책 지향점에 보내는 의문에도 염려만 그윽할 뿐이다. 심지어 지탄의 대상인 정부까지도 민영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지상에 ‘민영화’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번번히 여론은 동요한다.
여기서 민영화의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민영화(民營化)는 국가가 운영중인 사업권을 민간에게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의료 민영화는 ‘공급자와 보험자’라는 두 가지 관점의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의료 제공자인 의사나 의료기관을 정체성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95% 이상은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운영중이다. 공공 의료기관은 5%에 불과하다. 1980년대 23.5%였던 공공병원 비중은 2000년 들어 9.1%로 급감했고, 최근에는 5% 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의료 공급자 측면에서는 이미 민영화가 이뤄져 있다는 얘기다.
우려의 시각은 보험자의 민영화에 더 가깝다. ‘전국민 건강보험’이라는 우리나라 제도에서 보험자는 국가다. 바로 국가가 건강보험료를 징수하고, 관리하고, 지출한다. 민영화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이 보험자의 역할을 민간에게 이전했을 경우를 전제한다. 추측 가능한 여러 형태의 보험체계를 차치하고라도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위험성이 크다.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괴담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고, 호주머니 사정이 의료서비스 질을 결정짓는 비극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정부도 ‘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국민 모두가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며 동요를 경계했다.
그도 그럴것이 40년이란 세월 동안 어렵사리 구축한 시스템이고, 미국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건강보험체계를 정부가 뒤틀어 버리는 우를 범할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민영화 논란과 맥(脈)을 같이하는 영리화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현행법상 의료기관 설립은 의료인, 비영리법인,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에 국한돼 있다. 여기에 외부 자본이 유입되고, 병원들도 영리를 추구토록 허용하는게 의료 영리화다.
하지만 영리화 역시 상당한 어폐를 갖는다. 2014년 2월 현재 전국에는 5만9327개의 의료기관(치과, 한의원 포함)이 운영중이다.
이 중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개설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96.31%를 차지한다. 여기에 법인화 전환을 하지 않는 병원까지 합하면 그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즉 전체 의료기관 중 3% 남짓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영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율과 의미 상으로는 이미 영리화 돼 있는 구조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도 그렇다. 이 법은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차려서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병원이 의업(醫業)의 본질인 진료수익으로 발전할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호텔업이나 화장품 업으로 돈을 벌라는 비판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료 영리화와는 무관하다.
일본의 의료법인은 목욕탕이나 외식업, 간병서비스 등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국민건강보험과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진료를 해야 하는 당연지정제가 바뀌지 않는 어떤 논의도 영리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 역시 영리법인 도입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수 차례 언급했다.
문제의 핵심은 의료 민영화나 영리화 논쟁으로 한국의료 문제의 핵심인 저수가 이슈가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료가 이뤄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적정부담, 적정수가, 적정진료 체제임에도 별 실익이 없어 보이는 민영화, 영리화 논쟁에 제대로 공론화 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15년 만에 다시금 투쟁의 깃발을 치켜세운 것 역시 저수가와 무관치 않다. 어찌보면 ‘원격의료’ 보다 ‘적정수가’ 문제가 투쟁의 핵심이다.
수 십년 간 저수가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의료기관들이 이제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 정부도 이를 알기에 숨통을 틔워 준다는게 오히려 논란만 부추기는 꼴이 됐다.
적정수가 보전에 자신이 없는 정부가 민영화나 영리화의 소모적 논쟁의 시발점은 아닌지 진중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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