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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허리에는 벌겋게 발진이 나타나 있었다. 군데군데 생긴 물집 그리고 극심한 통증. 대상포진이었다.
환자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2년. 관절과 신장이 많이 손상된 상태로 나를 찾아온 루푸스 환자였다.
루푸스는 외부로부터 인체를 지키는 면역계에 이상이 생겨 오히려 면역계가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오래전부터 루푸스를 앓아 신장병이 생겨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심각한 상황인 만큼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를 시행했다.
스테로이드는 치료효과는 좋으나 부작용이 있는 약물이다. 치료 과정에서 몸이 붓고, 피부가 약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루푸스 환자에게 잘 나타나는 대상포진에 걸려 환자는 결국 다시 입원하게 됐다. 대상포진에 걸린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을 겪는다.
당시 환자는 몇 년 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나 루푸스병이 심한 탓에 난소가 파괴되고 월경이 중단돼 임신을 하기 힘든 처지였다.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데다 아이도 가질 수 없게 된 환자를 보는 내 마음도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155cm 정도의 작고 가냘픈 체구에 선한 인상을 가진 환자는 유난히 부부 금슬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환자는 다시 힘겨운 입원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섭도록 아픈 증상에도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심지어 같은 병실의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와 노인환자들이 거동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의 병수발을 거들어 다른 보호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어느날 나는 환자에게 ‘아이는 어떻게 할 예정인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는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된 건 불행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다른 세상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며 “루푸스가 나를 약하게 만들었지만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돌보게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불우한 처지의 아이를 입양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잘 키워볼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헌신에 감동받은 나는 이후 환자와 더욱 돈독한 신뢰를 키우게 됐다.
다행히도 그를 괴롭혔던 대상포진은 잘 치료됐다. 이후 외래 진료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쌓아갔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 덕분인지 최근 환자의 루푸스 증상은 많이 호전되고 있다.
오랜 시간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 중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주치의마저 믿지 못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흔들림 없이 치료에 임하며 주위를 먼저 배려하는 환자는 ‘의사도 춤추게’ 한다.
그의 병을 낫게 한 것은 의사의 처방과 약물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두터운 신뢰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