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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으~리’ 열풍이 뜨겁다. 배우 김보성이 평소 강조하던 ‘의리’를 특유의 박력있고 남성적인 발음 그대로 표현한 단어다.
자신의 이미지와 의리라는 단어의 교묘한 조합이 돋보였던 한 음료 광고가 대박이 나면서 말 그대로 ‘으~리 으~리’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한결같이 고집하는 검은 선글라스가 친구 대신 싸우다 실명하게 된 눈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명실 공히 의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의리는 거친 사나이의 세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임은 분명하다. 특히 ‘義’를 중시해온 동양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 형제성인(兄弟聖人)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것은 신하된 자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의리’ 때문이었다.
또 유비·관우·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한 날 한 시에 죽자”고 맹세한 것도 ‘의형제’를 맺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충절과 신의로 집약된 군신(君臣) 간 의리가 강조됐고, 조선의 선비는 ‘인(仁)과 의(義)를 바탕으로 의리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자부했다.
이러한 의리의 근간은 정의다. 옮음이 있어야 의리도 성립한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그 명제에 대한 가장 명료한 풀이다.
‘의리 대통령’이 최대 국정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을 선언하자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각 정부부처의 처절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의료정책에서 만큼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물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비정상의 정상을 위해 ‘3대 비급여 개선’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 굵직한 정책을 내놨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보험혜택이 늘어나고, 본인부담 액수가 확 줄어들게 된 만큼 당장 비정상의 정상화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겠다.
반면 의료공급자인 의사와 병·의원은 자신들이 복지부의 비정상의 정상화 행보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들의 읍소는 비단 이번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제도권에 예속된 이후 각종 의료정책은 이들에게 가혹함으로 다가왔다.
그 때마다 정부는 ‘국민’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의료계의 고충은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는데 급급했다.
의료단체 공식행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의료계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의료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정부 측 인사말이 이를 방증한다.
비현실적 보상체계 하에서 스스로 생존을 고민하다 보니 비급여에 눈을 돌리게 되고, 이는 곧 의료왜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십 수년째 되풀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덤터기를 씌우는 병원을 불신하게 됐고, 정부는 불법 의료기관 색출을 위한 보안관을 자청하며 ‘국민을 위한 정부’ 이미지 각인에 열을 올렸다.
환자에 치이고 정부에 조이며 매번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에 처한 의료기관들에게는 이제 정부를 향한 악(惡) 밖에 남지 않았다.
전국민 건강보험의 건강한 발전은 보험자인 정부와 가입자인 국민, 공급자인 의료계의 유기적인 관계가 담보돼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 희생 강요는 곤란하다.
의학의 원리인 ‘의리(醫理)’를 탐구하고 습득하는 것은 의사의 본분이다. 하지만 의사가 청진기 대신 계산기를 들고 있는게 작금의 의료계 상황이다.
의과대학 내에 돈 버는 법을 연구하는 동아리가 생겨나고 있는 현실에서 예비의사들에게 ‘의리(醫理)’ 탐구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 모른다.
정부가 진정 의료계를 건강보험 운영의 한 주체로 생각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감싸안아야 한다.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은 결코 재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함께 가야 할 동반자에게 계속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의리’를 기대하기 힘든 결정적 순간을 맞게 된다. 그 끔찍한 상황을 고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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