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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적자’, ‘방만 경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지방의료원 중에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상북도 김천의료원이다.
지금까지 전국 38개 공공병원 중 26개 기관이 김천의료원의 혁신 사례를 배우러 다녀갔다. 노사갈등으로 바람 잘날 없는 속초의료원도 여러 번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들까지 찾는다.
김천의료원이 공공의료기관의 모범사례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영일 원장[사진]은 “직원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취임 당시만 해도 김천의료원은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갚아야 할 돈이 무려 175억원이나 쌓여 있었고, 직원들은 만 3년 동안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해 사기가 저하될 대로 저하돼 있었다. 체불임금도 17억원에 달했다.
여론도 등을 돌려 도의회는 "의료원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 역시 민간병원에 비해 형편없는 의료원의 서비스를 외면한 상황이었다.
김영일 원장은 “당시 경영 측면에서는 진주의료원보다 더 심각했다”며 “직원들에게 의료원 폐쇄를 막으려면 경영 개선을 위한 고통 분담이 당분간 필요하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장 먼저 직원 스스로 문제점을 도출하도록 했다. 의료원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신임 원장보다 직원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꿰뚫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영일 원장은 “전 직원이 1박 2일 연수를 떠나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공통으로 언급되는 문제를 해결하면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도 높은 비용 절감이 이뤄졌다. 직원들은 급여의 5~15%를 반납했고, 토요일 무급 근무를 실시했다. 통근 버스 운행도 중지했다.
고통 분담은 직원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원장 역시 솔선수범해 급여의 50%를 반납했다. 직책에 따른 여러 지출을 감안하면 거의 전액을 내놓았다는 전언이다.
물론 반발도 있었다. 노조와의 마찰은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런 노력이 당신들을 위한 일”이라며 끝까지 설득했다. 결국 경영 개선 6개월 만에 변화가 일어났다. 취임 당해 12억이었던 적자가 12월 말 6억 5000만원으로 감소한 것이다.
김영일 원장은 “6개월 후부터 매월 흑자를 유지해서 취임 후 2년 연속 흑자경영을 달성했다”며 “2010년에는 6억 3000만원, 2011년에는 10억 5000만원 흑자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료 수입이 떨어진 적이 없다며 줄곧 성장세”라고 덧붙였다.
경영 성과의 혜택은 직원들에게로 돌아갔다. 17억 체불임금을 취임 후 만 1~2년 안에 다 갚았다. 직원들이 반납했던 토요 근무 수당도 지급했다.
직원도 더 뽑았다. 취임 당시 176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152명 증가해 328명이 됐다. 용역 업체 소속이던 경비원, 청소부, 영양사도 직접 고용했다. 직원들의 소속감 강화는 업무 질 향상을 이어졌다.
김영일 원장은 “내 입장에서도 고통스러운 경영 개혁을 추진하다보니 진심이 왜곡돼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의료기관을 만들고 싶다는 진심이 통한 덕분에 직원들이 지금까지 잘 따라와 준 것 같다”고 전했다.
그의 출근 시간은 주중, 주말 없이 새벽 3~4시다. 그는 말단 직원 이름까지도 외우고 있다. ‘원장 얼굴 본 지 몇 년 됐다’는 말도 사라졌다.
“언제까지나 직원들에게만 고통 지울 수 없어”
아사(餓死)직전의 위기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만큼 그의 고민은 깊다. 직원들이 잘 버텨줬지만 경영 개선 의무를 언제까지나 직원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김영일 원장은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장비와 시설이 노후하고, 우수한 의료진 확보도 어렵다”며 “특히 우리처럼 도심에 위치할 경우 민간병원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직원들 월급 올려주는 대신 MRI, 체외 충격파쇄석기를 자비로 구입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하지만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원의 경쟁력은 결국 의료진, 일반직원, 우수한 장비, 쾌적한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며 “수익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고 하기 이전에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착한 적자’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의료원 고유의 공공의료 기능 정립을 위한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영일 원장은 “과거의 낡은 공공의료의 개념이 아니라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의료 역할을 찾을 수 있게 정부가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