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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미혼여성인 정 모씨는 어느 날 심한 복통과 함께 갑자기 배에 커다란 혹 덩어리가 만져져서 한 병원에서 자궁근종으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러 전문병원을 순례했지만 근종의 크기가 너무 크고 갯수도 많아서 자궁절제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권고를 받고 울다가 울다가 저희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근종이 20개가 넘는데다 빈혈도 심했고, 자궁은 또 얼마나 커져는지, 임신 5개월 정도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수술하기 전날 회진 때 이 여성은 제손을 잡고서 간절한 표정으로 “선생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하며 비는 겁니다.
저는 놀라면서“제가 환자분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진정하세요” 라면서 안심을 시키려고 했더니 “제 소중한 자궁을 살려주세요. 결혼도 하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어요”라며 울먹였습니다.
수혈까지 하면서 6시간이 넘는 힘든 수술이었지만 근종 28개를 모두 제거하고 자궁도 살리면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입원할 때와는 달리 그녀는 웃는 얼굴로 퇴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여성의 결혼 연령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1955년 한국 여성의 결혼 연령이 평균 20.4세였다는데 2012년에는 30.2세입니다.
이 때문에 첫아이를 출산 하는 나이도 이제는 서른살이 넘어섰습니다. 공부하랴, 취업하랴, 직장에서 살아남으랴, 여성들이 결혼을 뒷전으로 미루는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서도 임신과 출산은 또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부인과 질환이 증가하는게 큰 문제입니다.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등을 앓는 환자수가 최근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혼 여성들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여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야 진단을 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산부인과라는 과(科)의 이름이 산과는 산모, 부인과는 부인들만 찾는 과인것 처럼 인식되고 있는 듯 해 안타깝습니다. 결혼으로 부인이 되어야만 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면 누구나 친근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곳인데도 이름 때문에 미혼여성들이 적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흔합니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학회에서도 여성의학과로 과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들도 많답니다. 저궁근종은 가임기 여성 5명중 1명에게 생길 정도로 흔한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그냥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미혼여성에서나 출산을 원하는 여성에게는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에 세심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서울성모병원에서는 2010년 2월 자궁근종 센터를 개설했습니다. 이 센터에는 부인과 진료 분야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톨릭의과대학 산부인과학 교실의 생식내분비분과, 부인종양분과 팀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그동안 자궁근종 치료를 통해 축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영상의학과, 인터벤션영상의학과, 혈액내과 의료진들과 협진으로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최상의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센터입니다.
다빈치 첨단 로봇시스템으로 기존 복강경수술로 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자궁근종 절제수술도 개복하지않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자궁근종 용해술, 자궁근종색전술, 복강경하 근종절제술, 자궁내시경하 근종 절제술 등 환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최소 절개 시술의 맞춤 전문치료가 여러 교수진들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결혼을 앞두고 거대한 자궁근종 진단을 받고서 불안감으로 바닥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던 40대의 박 모씨. 결혼 적령기를 한참 지나 이제 짝을 찾았는데... 안타까웠습니다.
병원도 여기 저기 많이 다녀본 듯,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잇고 선뜻 수술하는 데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직경이 12cm나 되는 근종(정상 자궁 크기의 4배 수준)의 절제를 위해 개복하지 않고 로봇수술이 잘 되었을 때 그녀의 밝고 환한 미소를 본 순간 “이 환자분이 그때 한숨만 푹푹 쉬던 그 사람 맞나요? ”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공적인 수술 후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는 저의 힘들고 피곤한 일상에 환한 무지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최근 휴가 중 들렀던 박경리 선생님 기념관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지. 근데 그 어머니의 자궁을 확대하고 확대해보면 그게 지구가 되고 우주가 되는 거라. 이건 곧 지구가 우리의 자궁이란 말이예요.” 썩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자궁을 잘 지키면 지구가 지켜질 것만 같았습니다.
서울성모병원 5층 수술실 교직원 출입구 앞에는 일층에서 이사온 성모상이 있습니다. "오늘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잘 될 수 있도록 꼭 도와주세요" 라고 간청하면서 수술방으로 향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