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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희미한 안개 속에 휩싸인 미지에 대해 희망을 걸어 본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꿈꾸어 간직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의료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교직에 몸담은 지 30여 성상을 맞이하면서 또 한 번 간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의료계에 희망을 새겨 본다. 되새겨 보면 2014년 우리 의료계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고, 갈기갈기 찢어져서 만신창이가 난 그야말로 바닥을 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는 100년이 훨씬 넘는 의료계 역사 속에서 수장을 탄핵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 됐던 해였다. 누구의 잘잘못이나 시시비비를 논하기 이전에 의료계 연대기(年代記) 속에 지워지지 않는 큰 상흔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잉태되어 왔던 의료계 내 오만과 질시, 아집과 불통, 회원 상호간에 투쟁 그리고 직역간의 질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졸렬하고 저급한 현상이 쌓이고 쌓여서 표출된 일이다.
나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즉시 적대시하는 회원 상호 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현상, 그리고 완장 찬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권력투쟁적인 모습 등으로 인해 대한의사협회가 마치 복마전(伏魔殿) 같이 변함으로써 많은 회원들이 등을 돌리는 사태를 초래했다. 더욱더 걱정스러운 일은 이러한 혼탁한 현장에 의료계 미래 희망인 젊은 의사들이 무비판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 대본체' 역할 충실해야
명실 공히 의협은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이 소속된 모든 단체들을 끌어안고 가야하는 의료계의 대본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의 종파분자(宗派分子)와 같은 언행으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 의사 회원들의 반은 의협에 무관심한 사람들이고, 그나마 의협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상호 비방과 불협화음이 난무하고 있는 곳이 바로 바닥을 치고 있는 의협의 현주소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천인단애(千仞斷崖) 바위틈에 비스듬히 누어서 온갖 풍상을 어렵게 견디어 내고 있는 한그루의 소나무와 다를 바 없다.
의사와 의사 단체들을 대표하는 의협은 회원들의 권익과 국민보건 의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대외적으로 많은 단체나 행정부, 국회 등과 수많은 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이렇게 허약하고 응집력이 결여되고, 대표성을 상실한 이익단체와 누가 진정한 협상을 하려 하겠는가? 국민들로부터 신뢰 받지 못하는 단체를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그동안 의료계 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회원들로부터 가장 많이들은 말은 “의협이 나를 위해서 해준 게 뭐가 있기에 회비를 내라고 하느냐?”는 말로 기억 된다. 물론 이는 현재 의협의 답답한 행보를 질타하는 사랑 어린 우려의 힐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힐책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며 이럴 때 일수록 회원의 의무를 다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그 어느 시점보다 필요할 때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井底蛙)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우물 바닥에 누어서 하늘을 보면 동서남북의 광활한 하늘은 보지 못하고 오직 세평짜리 하늘 만 바라보고 세상을 논하게 된다는 점이다.
"을미년 새해에는 지난 2014년과 다른 양상 전개되길 기원"
필자는 앞에서 2014년 대한의사협회는 바닥을 쳤다고 언급했다. 정말 바닥을 쳤어야 한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바닥을 치는 것도 모자라서 쥐구멍을 판다면 영원히 자멸의 길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이제 신년 새해에는 새로운 집행부의 효율적인 구성을 통해서 의협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충실해야 하며 국민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한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국민에게 등을 돌리는 전문가 단체는 존재 가치도 없고 존립할 수도 없는 것이다. 대정부 혹은 대국회 활동에는 탄력성과 유연성을 갖고 대처할 줄 알아야 하며 그들을 대척점에 두되 적대시 하지는 말아야 한다.
모든 회원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의료계는 요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대형병원은 대형병원대로, 개원 회원은 회원대로 정부의 열악한 저수가 정책과 척박한 의료체계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서 의료 공급이 지속가능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국민들이 의료계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거기에는 불통과 괴리, 상호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협에 무관심했던 회원들께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의협은 바로 회원들 것이며 회원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가는 조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엄동설한에 이가 시리지 않은 것은 입술이 있기 때문이다. 입술이 건재 하는 동안은 그 고마움을 모르게 되어 있다.
새로운 의협 집행부와 회원은 계란을 품은 어미닭과, 알 속에서 이제 막 부화된 병아리와 같은 관계다. 줄탁동기(啐啄同機)와 같은 상생의 철학과 마음으로 난각(卵殼)을 깨는 고통을 감내해 새로운 융합의 품격 높은 의료문화를 창출해내야 한다.
2015년이 의료계 대본체로서 대한의사협회가 발전하는 새로운 초석을 세우는 첫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