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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유난히 짙게 든 의사들 관련 뉴스 두 가지를 접했다. 하나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능 만점자가 무려 네 명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재학생 기준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란다. 여기까지는 감탄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대학은 의대를 진학하겠다는 것이다. 중도 수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이들은 의대를 갈 확률이 높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이후 전국 수학능력시험 수석자들의 진로를 살펴보면 이과 수석 16명 중 13명이 의치대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말고도 요즘에는 이과에서 최상위는 물론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은 거의 의대를 가거나 목표로 한다. 내년도 지방의대 입학 점수가 서울대 공대를 상회하는 것에서도 의대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가히 ‘묻지 말고 닥치고 의대’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나라가 의사공화국도 아닌데 천재에 준하는 수재들이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씁쓸했다.
또 하나는 안타깝다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成形) 사안이다. 세계의사협회(WMA)는 금년 10월 중순경 미성년자에 대한 미용성형수술을 하지 말 것을 권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WMA는 “아이들은 신체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아 성형수술이 위험할 수 있다”는 취지를 들며 미성년자 대상 성형수술의 광고·마케팅 금지를 제안했다.
그런데 이런 WMA 제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완전 엇박자 반응을 보였다. “의사의 진료 결정권과 미성년자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성명서까지 냈다.
참으로 어이없고 이기적인 발상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과연 어느 정도로 미성년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주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다 허위광고에 더욱이 요즘 같은 방학에는 저질 상술(商術)로 포장된 ‘블랙마케팅’으로 오히려 학생들을 비뚤어진 사고(思考)와 천박한 성(性) 상품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주범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최고의 성적을 내는 의대생들이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몰리면서 장점이 부각된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성형이나 미용 측면에서 한류(韓流) 열풍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성형수술 천국’ 이미지 뒤에는 비뚤어진 미(美) 의식의 발로와 성(性) 상품화라는 부끄럽고 서글픈 부작용이 숱하게 깔려있다. 가장 최근에도 20대 여대생이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양악안면성형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제 최근 성형수술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표적인 것이 무분별한 성형수술이다. 방학만 되면 어린 학생들 대상의 성형광고가 활개를 치는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하철 전동차와 버스에는 ‘After’와 ‘Befere’ 사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걸려 있다. 그러다 보니 ‘유령 대리수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런 유령대리 수술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아이러니다.
더욱이 이젠 외국인 대상의 불법 브로커까지 날뛴다.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한국 성형수술 비용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고 부작용 사례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자칫 한국이 바가지 성형술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의사들이 많다. 선배며 후배며 고명하신 교수님들도 꽤 있다. 막역한 의사친구들은 제법 돈도 벌고 나름 중년의 삶을 계획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서 정서적 여유는 사라져 가는 것 같고 직업 만족도 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되면 안되서(대출 폐업 등) 힘들고, 잘되면 잘돼서(삭감·실사 등) 어려운 현실에 소위 ‘점빵 사장’이라는 자괴감을 토로한다.
의사라는 소명의식을 발휘하고자 했던 꿈과 희망은 어느덧 빛바래져 하루하루 돈의 노예가 되는 자신을 부정하고 싶다는 지인도 만나봤다. 의대가 인기 상한가이고 그래도 의사는 괜찮지 안냐고 떠보면 손사래 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을 보면 예전 같은 ‘의사 최고’인 시대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한국적 ‘닥치고 의대’ 세태는 어찌 보아야 하는지 안타깝다.
우리나라 최상위 이과생들이 전자, 전기 및 화학에서 의대로 눈을 돌리면서 사실 한국 의료는 임상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제도라는 공적영역의 한계로 인해 많은 수재형 의사들이 나중에는 본인 의도와 무관하게 생업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서울의대가 교수 1인당 논문 수에서는 전세계 20위권에 들지만 논문당 인용수는 80위권을 맴도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서울의대 교수들이 읽지 않는 논문을 쓸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의료 현실이 참담하다”는 노(老) 교수의 한탄이 뇌리를 스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이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이런 흐름은 이제 수정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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