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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김치칼국수로 나의 내면과 만나기"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경제부)
[ 2015년 01월 12일 07시 00분 ]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은 식구가 엄청났다. 우리 5형제만 해도 다른 집의 갑절이었는데 집이 서울이어서 시골의 사촌형 2~3명까지 와 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합치면 식구가 10명이 훌쩍 넘었다. 살림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어린 시절 라면을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면을 한번 식탁에 올리려면 10개 이상을 끓여야 했고 막상 먹으려면 식구들에게 밀려 한두 젓가락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 때 어머니가 당시에는 비쌌던 라면 대신 끓여주시던 것이 ‘어묵김치칼국수’였다. 멸치와 김치로 육수를 내고 시장에서 팔던 칼국수 생면을 넣어 한솥 가득 끓인 일종의 구황식품이었다. 어찌나 자주 먹었는지 나중에는 아예 입에도 대기 싫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그 ‘어묵김치칼국수’였다. 

 

어릴 때 피하고 싶던 초라한 밥상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당긴다. 생물학적으로는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인 혀의 미뢰가 노화되면서 자극적이고 다양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것이 1차적인 이유다.


 하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세월로 불리는 시간의 흐름이다. 시간 변수는 어떻게든 진실을 부각시키는 강한 기능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정비례해 본질과 현상의 괴리가 정확하게 드러나는데 지동설 같은 자연현상은 물론이고 인간의 심리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대뇌 피질이 발달할 무렵인 10대 때 먹던 맛에 대한 원초적 향수는 왜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질까? 이는  미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음의 작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엄마표 밥상의 대척점에 있는 외식 음식은 가식적 요소가 많다. 많이 달고, 많이 기름지고,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우리가 먹는 상당 부분의 음식은 어머니의 손대신 기계가 빚어내는 공학의 산물이다. 음식에는 진짜 게살이나 과일 대신 게살과 과일 맛을 내는 향료가 잔뜩 들어있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가슴 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살지 않고 체면과 책임감에 따라 산다. 대부분 조직에 얽매여 성과에 내몰린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삶이 계속된다.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며 자기를 그리고 주변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래서 외롭다. 

 

사람이 승승장구할 때는 이 외로움을 잘 모른다. 그러나 외발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위태로운 삶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왔을 경우에 낭패감은 더 커진다. 남을 속인 것보다 자기를 속인 탓에 피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분열이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이 집권 후 정신병자들처럼 광기에 사로잡혀 사람 목숨을 부초처럼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신이 빚어놓은 조각품처럼 보이는 멋진 외모의 연예인들이 톱스타 자리에 오른 뒤에 마약을 복용하거나 자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 약관의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는  ‘소년급제’는 인생의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도 있다. 


가식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은 민낯대신 가면을 쓰고 산다고 말한다. 이런 가면을 심리학 용어로 ‘페르소나’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그리스 시대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그리스 말이다. 아들로, 남편으로, 직장 상사로 우리는 상황에 맞는 가면을 바꿔 쓴다. 가면은 한 꺼풀 벗겨놓으면 사실상 계급사회인 인간 사회에서 개인을 보호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상사에게는 믿음직한 모습으로, 부하에게는 근엄한 모습으로 변신 가능한 것이 페르소나 덕분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내면과 다른 페르소나를 갈구하면서 생긴다. 남성은 강자를, 여성은 미인을 투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사의 정도가 심하면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몰아간다. 이런 투사의 정도를 놓고 보면 우리는 세계1위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가 성형수술 1위에 자살 1위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이 ‘투사본능’을 미래의 주역인 아이에게 강요한다. 서울대 고대 연대의 첫글자를 딴 스카이(SKY)를 아이들에게 들이민다. 수능 성적이 인간의 성적인냥 말도 안되는 투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진다.


수능 성적(이전의 학력고사 성적)이 정글같은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들은 잘 안다. 서울대 나온 고교 동창보다 뒤에서 건들거리던 날라리 동창이 더 잘나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하버드대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20세기 산업사회의 지능지수 중심의 교육을 반대한다. 대신 그는 8가지 다중지능 이론을 선보였는데, 논리수학지능과 언어지능을 포함해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을 꼽는다.


많은 지표 가운데 수리와 언어 지능에만 집착하는 부모의 아이는 행복할까? 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스카이의 가면을 쓰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성취를 이룬다고 해도 아이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 진짜 자기의 민낯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괴리는 현대인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설화인 옹고집전을 보자. 옹고집은 부자지만 적선을 권하는 스님들을 구타하는 등 못된 짓을 일삼다가 허수아비로 만든 가짜 옹고집에게 마을에서 쫓겨난다. 옹고집을 벌주기 위해 허수아비를 만든 스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뒤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아를 잃고 살다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뒤 자아를 다시 찾는다는 내용의 설화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설화나 신화는 집단 무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내 안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나-심리학자는 ‘내면의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를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하면 우린 집에서 쫓겨나는 옹고집이 될지 모른다. 늘어나는 우울증 환자나 ‘황혼이혼’ 등은 어쩌면 옹고집전의 현대판 버전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먹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면 ‘현재의 나’와 ‘내면의 나’가 일치하던 순수한 시절에 대한 동경일지 모른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별 두려움 없이 나와 많은 형제를 낳아서 잘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한 경외감일 수도 있다. 이런 동경과 경외심은 젊을 때는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소박한 밥상에 대한 향수는 오늘 내가 느끼는 불안감의 또 다른 신호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푸아그라(거위의 지방간)와 오래된 빈티지의 프랑스 와인보다 쿰쿰한 청국장과 심심한 무나물 반찬에 엄지가 저절로 올라가는 나는 요즘 고은의 시 ‘그 꽃’을 자주 왼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잊고 지내온 ‘내 마음 속의 나’를 소박한 밥상으로 찾아보자. 그 꽃이 시들기 전에 말이다. 

데일리메디 webmaster@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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