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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개무량(感慨無量)이 제격이겠다. 무려 46년의 세월이다. 같은 해 세상 빛을 본 병원과 꼬마는 이제 중년의 원숙미가 물씬이다. 20병상 규모이던 병원은 400병상으로 성장했고, 전국 갑상선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거듭났다. 이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의사의 꿈을 키우던 소년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방암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정교수 임명을 목전에 뒀던 이 소년이 얼마 전 돌연 ‘마음의 고향’으로의 회귀를 결심했다. 하지만 그의 결정에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혁 보다 순응
분당서울대학교 김성원 유방센터장이 이달 1일 자로 대림성모병원 의무원장에 취임했다. 그의 취임은 여느 병원에서 이뤄지는 스카웃이나 초빙의 개념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자리였다. 사실 그는 이 병원 설립자인 김광태 이사장(국제병원연맹 회장)의 장남이다. 때문에 그의 회귀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대림성모병원으로서는 단순한 ‘2세 경영 시대’ 도래가 아니다. 설립자와의 혈연을 넘어 국내 유방암 분야 권위자의 부임은 말 그대로 천군만마(千軍萬馬)다.
병원이 국내 유방·갑상선 분야의 선도적 역할을 자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병원은 기존 갑상선센터를 유방·갑상선센터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김성원 의무원장이 유방암을 전공한 것도 다분히 이 같은 포석이었다. 간암이나 위암의 경우 높은 수준의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학병원 규모가 아니고는 만족할 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유방암은 대림성모병원 같은 중소병원에서도 최고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만큼 기존에 갖춰있던 갑상선에 유방암을 더해 경쟁력을 배가시킨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급진적 변화 보다 점진적 발전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대학병원에서 십 수년을 생활한 의사가 섣부르게 병원 경영을 논(論)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김성원 의무원장은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무엇을 이루기 보다 조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별한 인연
대림성모병원에 대한 김성원 의무원장의 애착은 그의 태생과 궤를 같이 한다.
그가 태어난 1969년 대림성모병원도 영등포기독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올해로 45주년. 김 의무원장의 나이와 같다.
집과 병원이 지척이었던 만큼 그는 어린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다. 또래 아이들에게 병원은 주사가 있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긴박한 응급상황이 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종료되는 모습도 신기했고, 백의(白衣)의 천사였던 간호사 누나들과의 추억은 아직도 아련하다.
그래서일까? 김성원 의무원장에게 대림성모병원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고, 또 그 조직원들은 형, 누나, 동생 등 가족과 진배없다.
그는 “유년시절을 보낸게 엊그제 같다”며 “의사의 꿈을 키우며 많은 추억을 안고 살았던 이 병원이 나의 직장이 됐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소달구지가 다니던 병원 앞길은 이제 엄청난 교통량으로 정체가 심해졌다”며 “병원도, 환경도 많이 변했지만 직원 간의 정(情)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김 의무원장은 이번 회귀에 대한 소회도 가감없이 털어놨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숙명,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불안 속에 지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 일단은 홀가분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 병원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며 “의료계가 어렵다지만 걷다보면 조심씩 길이 보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나 직원 모두가 행복한 병원을 만드는게 목표”라며 “의무원장이라는 중책이 주어진 만큼 성심을 다해 환자와 직원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원 의무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석‧박사 취득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외과 부교수 △한국유방암학회 홍보이사 △GBCC(세계유방암학술대회) 홍보위원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유전상담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