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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된지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처음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9 년간 근무하고 현재는 내과 병동에서 일하고 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은 갓 태어난 아픈 신생아와 엄마 뱃속에서 너무 빨리 세상에 나온 이른둥이를 돌보는 곳이다. 작고 가냘픈 아가만 보다가 갑자기 성인 병동 일에 적응하는 일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집중치료실에 비해 내과 병동은 탁 트여 있고, 작고 귀여운 아기를 보다가 성인 환자를 대하려니 각종 의료물품의 크기는 물론 몇 배나 힘이 들었다. 그렇게 환자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부터 모든 것이 어설프고 자신이 없던 나에게 용기를 준 한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는 갓 스물이 넘은 앳되고 예쁜 미소를 지닌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 질환 때문에 입원한 환자였다.
처음에는 다리 쪽에서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다 입원했을 당시에는 다리 전체와 몸통 쪽으로 붉은 반점이 퍼져있었다. 입원 후 며칠이 지나자 손, 발을 포함해 얼굴까지 온 몸으로 붉은 반점으로 뒤덮였다.
예쁜 그녀의 얼굴이 피부병으로 인해 점점 흉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피부가 따갑고 가려워서 짜증이 날 법도 할 텐데, 그녀는 병실에 갈 때마다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했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 온 몸을 가리거나 커튼을 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항상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도 일주일이 지나도 별다른 호전이 없자 조금씩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간호사 선생님 저 괜찮아 질 수 있을까요?"라고 눈물을 보이며 말하는 그녀 옆에 나는 한동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환자가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좀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되었다. 그 시간이 지나 그녀는 결국 병의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치료를 잘 받고 다시 예쁜 얼굴과 피부를 되찾아 퇴원하게 되었다.
"그동안 힘들고 괴로워서 여기 입원 했던 기억을 다 지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딱 한가지 좋았던 점이 있다면 선생님이세요. 선생님 때문에 힘을 얻고 견딜 수 있었어요. 감사 합니다"라고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그녀를 보며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해준 거라곤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가끔 말 걸어주는 등 내가 맡은 일을 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통해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 덕분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일하는 환경이 달라져 적응하기 힘들고, 환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매일 하소연만 하던 나에게 그녀는 가르침을 주었다.
환자는 나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 즉 결국 어디에서 어떤 환자를 돌보던 환자를 대하는 것은 같다는 말이다.
내과 병동은 오랜 지병을 가지고 입원을 반복하는 환자가 많다. 또 한번 입원하면 장시간 치료를 받기 때문에 환자와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가끔씩 질병과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의료진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경우가 생겨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그녀를 떠올리며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내가 환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녀가 주었던 작은 깨달음 덕분일 것이다.
나는 환자에게 있어서 그저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주는 간호사가 아니라, 나를 통해 힘을 얻고, 위안을 받으며 우리 병동과 아주대학교병원을 오랫동안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 내 동료들은 환자에게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아픈 곳 없는지 잘 살피고,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