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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어느 날, 빗방울이 두둑 떨어지더니 곧 그쳤다. 하늘엔 어설픈 먹구름이 가득했다. 서울대병원 연구동 앞 희뿌연 연못 속에는 잉어떼가 뻐금뻐금 숨을 쉬고 있었다. 고인 물이니 산소가 턱 없이 부족해보였다.
마침 이날은 대한의학회 제22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이윤성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사전 약속을 잡기 위해 1주일 전 전화를 걸었더니 “취임 인터뷰를 이미 했는데 무엇이 궁금하신가”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집행부 구성 배경에 대해 여쭙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하자 수화기 너머로 강하게 손사래 치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이윤성 회장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찾아오기까지…”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세간의 평을 의식치 않는 목소리였다.
대한의학회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의학 관련 최고의 권위를 가진 단체다. 회원 단체가 160여 곳에 이른다. 국내외적으로 내실 있는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학회들이 소속돼있다.
제22대 집행부 들어 대한의학회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임원 소속 대학이 소위 말하는 ‘Big 4’가 아닌 곳으로 전면 선임됐다.
한 의료계 인사는 “창립 30년이 넘는 의학회 회장은 그동안 서울의대와 연세의대가 다 차지했었다”며 “이번 집행부 임원 구성을 살펴보면 과거와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단연컨대 의학회는 ‘보직의 철옹성’ 같은 면이 있었다”며 “부회장 역시 서울의대, 연세의대, 가톨릭의대, 고려의대에서만 맡아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제22대 집행부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소재 대학병원 교수까지 전방위적으로 포진됐다.
이윤성 회장(서울의대)을 중심으로 부회장 장성구 교수(경희의대), 이수곤 교수(연세의대), 정지태 교수(고려의대), 권건영 교수(계명의대)가 집행부에 합류했다. 이사진 구성 역시 소속 대학이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집행부 구성 변화에 있어 이윤성 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윤성 회장은 애써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전하면서도 “의학회가 외부 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발전이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윤성 회장[사진]은 “어느 대학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 의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중지를 모으고, 적극적인 자세로 회무에 임할 수 있는 인물을 우선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학회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었다. 벤다이어그램 형태였다. 각 대학병원별 교수진이 교집합 형태로 뭉쳐 ‘대한민국 의학 수준 향상’을 위해 한데 어우러지는 모양새다.
이윤성 회장은 “우리나라 의학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며 “이는 곧 집행부 구성의 벽을 허무는 것은 의학회 미래를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Big 4’ 대학병원 위주 인사를 탈피한 부분에 있어 농담삼아 왜 굳이 그런 시도를 했냐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윤성 회장은 ▲원칙과 전통 준수 ▲선택과 집중 전략 ▲그들만의 리그 탈피 등을 임기 내 회무 운영 철학으로 선포했다. 이 중 3번째 회무 방침은 이미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윤성 회장은 “이번 인사 단행을 굳이 ‘혁신’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동원해 표현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작은 변화다. 작은 변화가 계속되면 우리 대한의학회 미래를 위한 초석이 굳건히 닦여질 것으로 믿는다”고 피력했다.
약 1시간이 지난 후 서울대병원 연구동을 나왔다.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다. 대한의학회 앞날이 이처럼 창연해지기를 기대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