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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인 유전체(genome)라는 말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말이 됐다.
인간의 유전체 정보를 질환의 진단, 치료, 예방에 이용한 유전체 의학도 더 이상 미래 의학이 현대 의학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필자가 의대 졸업반이던 1997년 상영된 'Gattaca'란 영화를 본 기억이 남는다.
유전자의 선택적 조작을 통해 우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을 차지하고 타고 난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하류 피지배층을 구성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의과대학 강사이던 2005년에는 장기 이식 및 신체 부위의 공여자로 만들어진 클론 인간들의 숙명적인 비애를 그린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들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란 사실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각 개인의 특성을 결정하는 개인별 유전체 변이와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체 변이에 대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대규모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를 임상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의 속도도 따라 가기 벅찰 정도다.
아직은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개인별 유전체 정보에 근거한 ‘개인별 맞춤 의학’의 시대가 이미 개막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진료실에 본인의 유전체 정보를 담긴 USB 장치를 들고 와 진료에 적용해 달라고 하는 일이 상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 진행 중인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유전체 의학의 적용 분야는 크게 개인별 유전 정보의 다양화에 따르는 약물 대사 능력의 차이에 기인한 약물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약물 유전체 분야, 단일 유전자 질환이 주를 이루는 희귀 질환 유전체 분야 및 암 유전체 분야 그리고 다양한 유전체의 복잡한 상호 작용 및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당뇨병, 고지혈증, 골다공증 등의 흔한 생활 습관병과 관련된 유전체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흔한 질환의 경우 원인 유전체의 변이 및 상호 관계가 복잡무쌍하며, 예측이 어렵고, 환경에 대한 영향을 제어 및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그 의미와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유전체 서열 이외의 다른 작용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후성 유전학 분석 방법의 비약적인 방법으로 임상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개인의 체질에 따른 섭생의 차별화 및 치료 약제의 선택을 주창한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은 이 분야의 선구자적 시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양한 유전체 변이 및 이에 따른 개인별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깊은 통찰의 부족, 단순한 몇 가지의 형질 간 분류에 의해 모든 사람을 네 가지 부류로 범주화하고 이에 대한 발전적인 비판과 지식의 업데이트가 없는 맹목적인 추종은 귀중한 기념비적인 개념의 답보 및 사장을 야기했고, 이를 과학화해 전개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개인의 유전체 정보에 따른 취업이나 보험 가입의 제한, 일상생활에서의 제약, 불필요한 걱정의 확산, 전술한 영화에서와 같은 우성 유전자를 가진 자들에 의한 열성 유전자 보유자들에 대한 지배 구조 등 의학 외적인 부분에서 발생할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 및 신뢰 구축 등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고, 윤리, 종교, 법적, 사회학, 인류학적인 다양한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주로 단일 혹은 희소 유전자 변이에 의한 희귀 질환의 유전체 분석을 통한 병인 유전자 변이 발굴 및 이에 대한 임상 적용을 주로 연구 주제로 삼아 진행해 왔지만 좀 더 다양하고 흔한 질환에 대한 유전체 분석 및 이를 이용한 치료에 주안점을 두고 의학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많은 의사 및 의학자들이 도전하고 있다.
주위에 해결되지 않은 증상이나 임상적 현상으로 고민하고 있는 환자들에 대하여 언제든지 자문하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마침내 그 원인이 되는 유전체 변이를 찾아 치료 및 예방에 일조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동료, 후배의사, 의학자들의 적극적인 활약을 기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