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는 아기의 사망을 ‘에크모’ 결함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해당 의료기기 제조사는 병원 과실이라고 주장해요. 우리 아기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느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살린 인공심폐의료기기로 알려진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
선천성심장병 아기의 죽음을 두고 병원과 의료기기업체 간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11일 저녁 7시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제15회 환자샤우팅카페’ 행사에서 김혜영씨의 눈물 섞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김 씨는 출산 한 달여 만에 아기를 잃게 됐다.
이 사건은 지난 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씨 아기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좌심실형성부전증후군(HLHS) 판정을 받고 서울 소재 K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선천성심기형 소아심장수술의 일종인 노우드수술(Norwood operation)을 진행하면서 아기에게 에크모를 달았다.
그런데 아기 부모에게 수술 후 아기에게 사용 중인 에크모의 부품 파손이 3번 발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담당교수 설명에 따르면 에크모 부착 3일 만에 에크모 기기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공급해주는 바이오펌프 부분에 균열이 발생했고 혈액이 새어나왔다.
펌프를 곧바로 교체했으나 이틀 뒤 또 균열이 생겼다. 이후 펌프를 재교체했으나 4일 뒤 동일한 문제가 발생해서 펌프가 아닌 장비 전체를 바꿨다.
아기의 부모도 펌프에서 피가 새어나와 통으로 피를 받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아기는 삼첨판 역류가 의심되는 상태였으며 호전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해당 교수는 “바이오펌프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이러한 기기 결함이 발생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다. 이 때문에 아기 몸에도 무리가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용 중인 어린이전용심폐기 M업체 장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해서 앞으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이후 의료진은 에크모를 독일장비인 MAQUET(어른·어린이 겸용)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진행한 뒤 아기의 에크모 의존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아기 상태는 악화돼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사망에 이르렀다. 에크모는 부모 동의 하에 아기의 사망 다음날 제거됐다.
김 씨는 “기기가 세 번씩이나 동일한 문제로 고장이 났음에도 문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고 원인 규명은 피해자인 부모 몫이 됐다”고 호소했다.
“제품 하자 탓 의료기기업체 책임” ↔ “병원 측이 사용 매뉴얼 어겨”
수술을 맡은 서울 소재 K대학병원 의료진은 아기의 사망 책임을 에크모를 제조한 M업체 탓으로 돌렸다. 반면 해당업체는 제품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병원 측 과실 때문이라고 맞섰다.
의료진은 "에크모 부품 교체 과정에서 아기에게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은 의료기기 회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오펌프 균열이 발생할 때 직원이 병원에 방문해 균열을 확인했고 특별한 설명 없이 제품을 교체해 사용하게 했으며, 두 번째 균열이 발생했을 때도 업체가 교체 지시만 했으므로 이에 따랐다는 것이다.
반면, 에크모기기 회사 M업체는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과부하로 인한 균열이나 물리적인 충격일 것으로 판단된다”며 “병원이 제품 사용매뉴얼 상의 사용시간(6시간)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식약처 "매뉴얼 준수하지 않은 병원측 과실" 판단
조사 요청 후 식약처는 사실상 의료기기업체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렸다.
해당 제품은 6시간만 사용하도록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병원에서 그 이상 사용해 문제를 발생시킨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펌프는 수술용과 치료용으로 구분되는데, 병원이 치료용을 사용했어야 하는데 수술용을 사용한 것이 문제 발생의 원인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식약처의 이 같은 판단에도 의문점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해당 의료기기업체는 이 사건 이후 각 병원의 심폐용혈액펌프를 전량 회수했다.
김 씨는 “세 차례 기기 결함에도 불구하고 부품교체만 했을 뿐, 무엇이 문제인지 왜 파악을 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또 “에크모가 세번 연속 고장나 기능이 중단됐다. 이것이 아기의 몸에 얼마나 무리를 줬는지 밝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한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실장은 “사망진단서 상에 사인을 선천성심장병이라고 명기했는데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아기 죽음이 심장병 때문인지 고장 난 에크모 때문인지 좀 더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산전 진찰로 아기의 심장질환에 대한 진단과 대응이 효과적으로 되고 있는데, 왜 이 아기의 경우 산전진찰 상에서 심장문제가 진단되지 않았는지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영신 변호사는 “병원과 의료기기업체 모두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합의도 할 수 없다면 소송 밖에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며 “병원과 제조사에 각각 소송을 제기한다면 피고 측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으니 이 과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싸움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가슴에 묻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소통하고 또 원인을 밝힌다면 또다른 죽음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