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모자, 옷, 상비약, 화장품, 카메라, 휴대폰 충전기 … ‘아, 난 지금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데 …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상에 무뎌져 하루하루 꿈을 꿀 수 있는 삶의 소중함, 나아닌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봉사’라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2013년 무더운 여름,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필리핀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열린의사회’를 알게 된 후, 처음 참여하는 해외봉사활동이기도 하지만 자원봉사자들과 의료진 39명이 함께 하는 첫 순간이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4시간 남짓 후, 자정이 넘어서야 우리는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습하고, 덥고, 버스가 들어가기에 길이 험난했던 곳. 그곳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 화려한 마닐라 시내의 도심지역과는 달리, 빈민가 지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듯 크게 차이가 났다. ‘산로케’에서 시작된 첫 진료는 전 날 내린 비로인해 작은 학교에서 진료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환영의 의미로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한 명 한명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렇게나 환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잠시 진료시작부터 대기 인원이 많았고, 한국보다는 낮은 기온이었지만 필리핀의 더위는 뜨거웠다.
둘째 날에는 ‘랄라미’지역에 위치한 농구코트에서 진료가 진행되었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 덕분에 더위는 잠시 잊은 채 진료가 시작되었다. 고열을 앓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고, 불덩이 같은 아이를 온 몸으로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지만 그 또한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 안타까움만 가득히 남았다.
진료 마지막 날, ‘사우스빌’ 지역으로 가는 버스 차창을 넘어 악취가 진동했다. 현지 사정을 면밀히 드러나게 해 준 열악한 곳이었다. 이곳 역시 진료 대기자들로 붐볐고 우리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료가 시작 되었다.
의사 수는 적은데 진료가 필요한 환자 수는 넘쳐나다 보니 대기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덥고 습한 날씨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간지럼이 일어 나 듯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언어, 다른 피부의 사람들이 함께 했던 시간 덕분이 아닐까 싶다. 건강을 돌볼 뿐만 아니라 해외 먼 곳에서 모두의 정성과 사랑으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단지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고 온 것뿐인데, 감사패까지 두 손에 받아드니,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날 밤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라 쑥스럽기까지 했다. 떠나는 버스 양 옆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맑은 눈이 웃음으로 더 빛났던 아이들. 잊지 못할 모습들이다.
우리가 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 까지 나와 다른 삶을 살았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봉사를 하고 느낀 감정은 모두 같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다시 오고 싶다. 내년에도 꼭 함께 오자’며는 말을 이었다.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베풀수록 내가 더욱더 성장함을 알 수 있다. 내가 베푼 것 보다 오히려 받은 것들이 더 많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 한 가지 뜻을 위해 같은 시·공간속에서 함께했던, 길고도 짧은이 아닌 너무나도 짧았던 5박 6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해외진료의 경험과 노련미를 떠나, 의젓해 보이던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서, 꼭 봉사활동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