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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첫 사망자(25번 환자/51세 여성)가 발생한 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 당시 주치의는 물론,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 95명은 모두 자가 격리 대상이 됐다.
첫 사망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본 주치의 이희성 교수(흉부외과)는 14일간의 긴 격리 기간을 마치고 지난 6월 15일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한다. 첫 사망환자의 주치의 이희성 교수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이희성 교수는 “당시 환자는 급성호흡부전으로 내원했는데 산소포화도가 40%밖에 되지 않았고 폐 기능을 거의 상실해 에크로(ECMO)를 시행했다. 당시 환자의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호흡기 질환자가 보일 수 있는 증상이었기에 메르스를 의심하지 못했는데 사망한 이후에 메르스 확진판정이 나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 교수는 "사망자의 기저질환이 면역력 약화와 호흡기 질환의 발병과 관계가 있으며, 메르스 감염 후 임상 경과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9일 저녁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환자가 메르스 의심 환자라는 통보를 받고 격리실로 옮긴 후 상황은 더 나빠져 심폐 소생술을 시행, 그러던 중 환자가 끝내 숨을 거뒀다.
메르스 검사를 위해 가래와 혈액을 채취해야 했기 때문에 사망한 환자는 한동안 중환자실에 머물러야했고 확진 판정이 나올 때까지도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확진판정이 난 후 주치의 이희성 교수는 바로 격리됐다.
이희성 교수는 잠복기인 2주 동안 자신의 방에서 가족들과도 격리된 채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 2주 동안이나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시간은 또 다른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 교수는 “격리된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메르스 관련 뉴스와 기사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메르스 관련 뉴스를 보면 우왕좌왕하는 당국과 천편일률적인 기사, 체계적이지 못한 역학조사 답답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시 환자가 슈퍼감염자였다면 지금 상황은 알 수 없다. 전염력이 약했기 때문에 중환자실에 근무했던 많은 의료진들이 감염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메르스 확진 환자가 감염력이 강한 것은 아닌데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희성 교수는 “메르스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격려하고 응원해야 할 때 의료진 가족까지도 바이러스 취급하며 왕따를 시키고 등교를 막는 등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을 볼 때면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는 낭비가 아니라 보험처럼 선투자 개념으로 봐야”
이희성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우리 의료체계와 저수가, 저평가 되고 있는 의료서비스 등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당국의 역학조사는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유는 역학조사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감염관리는 충분한 인력과 지원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건의료는 우리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질병에 대해 드는 보험과 같은 것”이라면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고 투자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재난응급사태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저수가체계가 낳은 비극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이번 사태가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으며 낭비되는 돈이라고 인식하지 말고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긴 격리기간 동안 환자를 떠나보냈다는 안타까움과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 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동탄성심병원은 14일간의 긴 격리기간을 마치고 지난 6월 15일 한명의 감염자도 없이 코호트 격리가 해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