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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대에 부딪친 원격의료가 해외에서는 새로운 수출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현행 의료법 상 의료인이 거리상 떨어져있는 의료인에게 의료 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가능하지만 환자-의료인 사이의 의료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집 건너 병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료기관 접근성이 용이한 편인데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주장이다.
지난 2014년 3월 의료계는 의약분업 이후 14년 만에 총파업까지 돌입하며 이 같은 원격의료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하고 나섰다. 그래서인지 가장 최근에 열린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도 1년 넘게 계류 중인 환자-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시민단체 역시 원격의료 도입이 자칫 민영보험사, 재벌병원 등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현재 원격의료 도입방식은 미국식 의료체계로 전환하려는 것”이라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원격의료는 일부 재벌 IT기업과 대형병원의 이익을 위해 국민건강을 팔아먹는 꼴이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중남미 4개 국가를 순방하며 맺은 보건의료협약에 원격의료 분야가 포함됨에 따라 국내 원격의료가 해외에 수출될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며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넓은 국토면적과 의료진 부족 등으로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페루,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등에서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의료 IT 분야에 관심을 표하며 원격의료 등과 관련해 보건부 및 민간병원 간 협력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같이 해외에서는 환영받는 원격의료가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박근혜 대통령은 “좋은 것을 우리 국민들에게는 못하고 중남미에 수출은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원격의료시장 급성장…글로벌 공룡기업들 적극 투자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막혀있는 원격의료는 세계적으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단계로 그 성장 추세 역시 가파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추산한 2015년 기준 전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1600억달러(172조5000억원)로 페루, 칠레, 브라질 등이 속한 라틴아메리카가 122억달러(12조원)에 달한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은 IT기술과 통신산업이 접목, 발전하면서 원격의료를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주목하고 의료기기는 물론 시스템 구축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헬스케어로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IT 글로벌업체들이다.
최근 구글은 ‘온라인 개인 주치의 시대’를 표방하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를 ‘테스트 판(trial)’형태로 선보였다.
예를 들어 ‘잦은 기침’, ‘불면증’, ‘식중독’ 등 증상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Talk with a doctor now’(의사와의 상담)서비스로 연결돼 전문의에게 실시간 원격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서비스는 아직 상용화 단계는 이르지 못했지만 앞서 발표한 ‘구글글래스’와 같은 상품들은 이미 의학교육 현장에 도입되며 원격의료의 포문을 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애플 역시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들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헬스키트를 메이요클리닉과 공동개발하고 미국 내 주요병원에서 시험 프로그램으로 활용함에 따라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 형성에 나섰다.
중국 등 도입…국내 병원·업체 경쟁력 구비 걱정
기업뿐만 아니라 각 국가들의 원격의료 도입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재진뿐만 아니라 초진까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초진이나 급성질환은 대면진료를 기본으로 하지만 재진 등 일부에 한해서는 원격진료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나라와 경쟁관계를 구축할 중국 역시 지난해부터 원격의료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중국은 전체인구 760만명을 보유한 닝보 시에 원격진료도시 계획을 내세워 고혈압, 당뇨병, 심리상담과 간단한 질병 등에 인터넷과 모바일로 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10년째 찬반 논란만 지속되고 있다 보니 정부 지원은 고사하고 규제에 묶여있는 원격의료 관련 업체들의 볼멘 소리는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28일 보건복지부가 중남미 수출길이 열렸다며 원격의료 업계와 간담회를 추진했는데 이 자리에서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유헬스협회 이광근 본부장은 “원격의료 관련 수출을 하고 싶어도 국내 제도상 원격의료 사업을 할 수 없는 탓에 수출 협상 때 보여줄 수 있는 국내 실적이 없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또한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원격의료 서비스 관련 제도의 조속한 정비를 해 달라는 건의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의료 접근성 등 고려 불필요 vs 만족도·효율성 높아 ‘팽팽’
이 같이 글로벌기업과 경쟁 국가들이 원격의료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원격의료 찬반 논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먼저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과 관련해 의료계는 우리나라는 광활한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대비 의사수가 적은 중남미 지역처럼 의료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가천대길병원, 산업기술증흥원이 원격의료 개발 등 MOU를 체결한 페루와 브라질은 국토 면적만 보더라도 페루는 남한의 약 13배, 브라질은 약 85배에 달한다.
의료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국가들의 경우 원격의료를 도입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기준 의사밀도가9.86명/Km2로 OECD 회원국 중 3위다.
10만명 당 의사 수를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2000년 대비 2010년 인구증가율 7.5%에 비해 의사 수 증가율이 40%로 2020년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특히 빅5병원 등 대형병원에 환자가 쏠리고 있는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원격의료가 도입될 경우 1~3차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고 동네의원, 지방병원들이 도산한다는 것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주장이다.
반면, 원격의료 추진에 나선 정부는 도서 산간지역 등 의료 접근성이 나쁜 지역 주민을 원격진료의 대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환자-의료진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입법취지 역시 고혈압이나 당뇨환자처럼 형식적인 진단과 처방을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병의원을 방문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3월까지 실시한 원격의료 1단계 시범사업 참여한 의료기관들 역시 환자와 신뢰감이 쌓인다는 데 효용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며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 역시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복약지도나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를 높일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실제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소비자 후생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5월 발표한 ‘원격의료 규제완화가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의료서비스 제공범위를 질병검사·상담에서 치료·약처방까지 확대할 경우 1인당 평균 2만4700원을 추가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나타났다.
이는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500가구의 20세부터 65세 가구주 또는 가구주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소비자 편익과 새로운 시장 육성을 위해서는 원격의료 허용범위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정부는 최근 원격의료 1단계 시범사업 결과를 내놨지만 논란만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참여환자들의 만족도가 77%에 달한다고 평가한 반면 의협 등 의료계는 “이번 시범사업 자체가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대면진료를 한 이후 원격의료를 통한 상담관리를 추가 제공하는 방식으로 원격의료 만족도 조사로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찬반 논란은 향후 복지부가 2단계 원격의료 시범사업 확대를 추진, 하반기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내놓겠다고 밝힘에 따라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