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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서비스와 장애재활서비스는 어떠한 의미에서든 구분돼야 한다.
재활치료 서비스 제공에 있어, 질병으로 인해 약물투여와 수술과 같은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분야와 질병이 수반되지 않은 정서 또는 신체상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의료법에 의한 의사 고유 영역이지만, 후자는 재활치료 전문가의 비의료적(非醫療的) 중재(intervention) 영역이다. 물론 직역(職域)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선진국 재활치료 시스템에서는 두 영역 간 전문성을 존중하는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의뢰(referral)를 통해 직역 간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이 의료 영역과 비의료 장애영역 모두 그들의 고유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처럼 ‘의료법’을 확대해석하는 경우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의사는 이 법에 근거하여 마치 피라미드 구조에서 스스로 자신들이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어야 하고 재활치료와 관련된 다른 분야는 의사의 하위에 있어야 하며 그들의 지시를 받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논리성도 없고 다학문적(多學問的)이고 융합학문적인 오늘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주장이자 근거가 미약한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치료’나 ‘임상’이라는 용어를 의료인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 의사가 아닌 자의 ‘의료행위’를 금(禁)하고 있는 것이다. 용어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용어 사용의 금지를 정부에서 조차도 추인(追認)해주고 있는 실정을 볼 때 과연 우리 정부는 재활치료 분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의료 혜택의 개선은 의료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활치료 분야의 전문성 인증과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전문가들 간의 수평적 접근을 통해 이뤄 질 수 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를 포함한 재활치료 분야가 처음 자리 잡기 시작할 때는 의료적이든 비의료적이든 간에 재활치료사는 의사의 단순한 조력자(助力者)라는 측면에서 자리매김이 되었지만 이것을 영원불변의 사실인 냥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분야는 학문·임상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통해 이미 이 분야에 석‧박사를 취득한 전문가들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배출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의사들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독자적인 개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뤄 볼 때, 지금의 제도에 상당한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제도로는 재활치료 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재활치료 서비스의 질 저하(質低下)를 초래할 뿐이다.
또한 일부 언어재활사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마치 의사의 처방을 받아 언어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현재 국내에서 언어재활사 중 거의 5% 미만 정도만 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대부분의 언어재활사는 말-언어문제를 직접 평가하고 교육·재활하는 병원 이외의 기관에서 언어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사가 보험사에 급여를 청구한다는 것은 질환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일 뿐이며 전문분야가 아닌 재활치료 영역에 대해 보험 급여 청구는 의사의 고유권한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단 한 시간도 언어치료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을 과연 누가 언어재활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언어치료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언어재활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누가 찬성하겠는가?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는 언어장애인들이 전문가가 아닌 의사들에게 처방이 필수적이라면 시간과 비용만 드는 이중구조가 될 것이다.
안경사가 안경의 처방권을 가질 수 있듯이, 청능사가 보청기 처방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과(耳科) 분야 의사들은 귀와 관련된 질환에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고, 청능사는 비의료적인 난청인을 대상으로 청능평가와 재활 및 보청기의 처방에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
일례로 정규대학과 대학원과정에서 청각학 분야 전문학위를 취득하고 청능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이 넘쳐 나도 의사들은 그들에 의해서 교육받았다는 이유로 불과 수십 시간의 연수를 마친 청각사를 독자적으로 양성해 병원에 배치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난이 사실이라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또한 학위를 가진 청능사들이 병원에 취업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또 다시 청각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또한 자산과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의사가 아무리 병원에서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식의 전근대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를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병원에서는 의사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단순 보조인들이다’라는 자조적인 얘기까지도 나온다. 이러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는 이 땅의 존경받는 대다수 의사들의 이미지 형성에 득(得)이 될 리 만무하다.
선진적인 재활치료 체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직역 간에 평등권이 우선시 돼야 하고 전문 영역은 서로 세분화되고 분업화 또는 협업화돼야 한다. 편향된 의료법이 그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하고 있는 한 우리나라는 후진적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사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단순히 ‘의료사고’를 운운하면서 직역 간의 문제를 외면하고 끝까지 강압적인 힘을 행사하려 한다면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는 30만 재활치료사들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하루아침에 일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적인 국민건강과 비의료적인 장애극복을 통한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개선하는 역할은 서로 보완관계로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서로의 전문성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의사와 재활치료사가 서로 존경하고 존중받는 아름다운 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는 환자와 장애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