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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3대가 같은 학교, 같은 진료과(연세대 이비인후과)를 나온 의료인이 있다. 유독 ‘아이들’이 좋아서 소아과를 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고통으로 시달리는 모습에 유달리 안쓰러움을 느꼈던 그는 이비인후과를 전공하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마침 ‘소아 이비인후과’를 다룬 어떤 해외저널이 눈에 들어왔다.
‘두경부 이비인후과’에 대한 의지도 있었으나, 과감히 ‘소아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1980년대 초였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학문이었다. 선택에는 후회가 없었다. 우리나라 소아 이비인후과 대부(大父)로 불리우는 前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정명현 원장의 이야기다.
현재 정명현 원장[사진]은 소리이비인후과에서 개원의로 활동하고 있다. 다시 진료를 재개한 지 벌써 100일이 흘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 국시원장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정명현 원장이 개원의로서 느낀 작금의 진료 여건은 어떨까.
그는 “2012년 2월 대학교수 퇴임 이후 소리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각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영난에 압박받는 의료계와 조급함에 시달리는 환자, 양 측의 시각차가 크다”고 덧붙였다.
정명현 원장은 소위 말하는 ‘5분 진료’를 최대한 지양하는 인물이다. 소아 이비인후과 전공 특성상 환자 상태를 짧은 시간 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따라서 소아 환자의 경우 평균 20~30분 정도 진료시간이 소요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결코 병원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명현 원장은 “주변 의료인들에게 들어보니 하루에 50명 정도는 봐야만 의원급 의료기관이 유지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며 “말이 50명이지 그게 쉽겠는가. 우리나라 의료계는 저수가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단적인 예로 ‘비싼 의료기기 장비 구매 비용’이 제시됐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의료기기 비용에 세금이 너무 많이 책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정명현 원장은 “수술용 현미경과 같은 장비는 억 단위”라며 “외국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비용이 너무 비싸게 책정돼 있다. 장비 구매 비용 ‘본전’을 뽑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욱 환자를 보려는 마음이 당연히 생기지 않겠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는 “건물 임대료도 너무 비싸다. 개원가에서 괜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다.
환자 보호자들의 잘못된 행태도 거론됐다. 정명현 원장은 “소아 환자가 방문했을 때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면 부모가 대변인처럼 꼬치꼬치 답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 상담도 진료의 일부분이다. 걱정되는 마음은 알지만, 전문가인 의료인을 믿고 차분하게 치료 경과를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1차 의료기관이지만 3차 의료기관처럼 진료를…”
정명현 원장은 1차 의료기관에서도 전문성을 높여 3차 의료기관 수준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소아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일정 부분 치료 부위가 겹치는 진료과들은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당부가 곁들여졌다.
정명현 원장은 “예를 들어 소아중이염의 경우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2살 이전 유아 중 95%가 겪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빈번한 질환”이라며 “그 중 80%는 자연치유되지만, 20%가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비인후과에서는 전문적인 치료를 담당하고,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등에서 80% 자연치유 환자를 돌보는 방향으로 서로 협력한다면 충분히 상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명현 원장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1차 의료기관에서도 고난이도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동안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3차 의료기관 수준의 진료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