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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발전을 논해야 하는 자리는 현실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했다. 지난 4~5일 양일에 거쳐 대한의학회가 개최한 ‘제14회 임원 아카데미’는 의학계가 처한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공의 모집마감 직후 처음으로 각 진료과 학회가 한 자리에 모인 탓에 전공의 수급불균형 문제는 물론 해묵은 과제인 기초의학 위기까지 의학계 임원들의 개탄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먼저 ‘불패신화’로 통칭되던 내과의 몰락에 대한 우려가 컸다.
대한내과학회 이동기 총무이사는 6가지 측면에서 문제점 요인을 분석했다. 난제 해결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곁들여졌다.
이동기 총무이사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내과 전공의 지원 미달 사태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진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다”며 “특히 지방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전공의 지원 감소 ▲선택 진료제 폐지 등 불리합 보험정책 ▲세분화되 학술활동으로 인한 교류 부재 ▲개원가 소통 장애 ▲부실한 의료 전달 체계 ▲대국민 신뢰 상실 등이 현재 내과를 둘러싼 위험 요인으로 손꼽혔다.
실제로 내과학회 회원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체 의사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막중한 비율을 갖고 있다. ‘내과의 붕괴는 곧 국내 의료계 전체 붕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동기 총무이사는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상급종합병원부터 개원의까지 전공의 확보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며 “전공의 결정이 보험급여 기준과 수가 정책에 따라 민감하게 변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주요 의료 정책이 의료 공급 주체(의료진, 학회 등)을 배제한 상황에서 수립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의료 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적절한 의료 자원 배분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내과보다 더욱 심각한 진료과는 단연 ‘비뇨기과’다. 2016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사상 최악의 미달 사태를 기록한 상황을 두고, 대한비뇨기과학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비뇨기과학회 주명수 회장은 “더 이상 아무런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나서지 않는 이상 비뇨기과의 미래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공의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가 보상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하루 빨리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뿌리부터 흔들리는 기초의학
대한생리학회 박병림 회장은 부실한 기초의학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부실한 의사 양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초의학교육을 배제하고, 교육 자체를 소홀히 하는 정책이 수립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계 근간이 되는 기초의학이 총체적인 난국을 맞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병림 회장은 “의학의 과학적·학술적·이론적 기반을 제공해 줌으로써 의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의료 과학화를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을 기하는 역할과 의무를 가진게 바로 기초의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계 현실은 다르다. ‘의학은 곧 질병의 치료’라는 축소 해석만을 함으로써 과학·학문으로써 의학이 정립되지 않은 채 오로지 기술적 의료 행위만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초의학 교수와 임상전임 교수의 양적 불균형 현상도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02년 82.6%였던 임상전임 교수 비율은 2010년 85.4%까지 증가했다.
반면에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예방의학 등 8개 분야 기초의학 교수 비율은 2002년 15.8%에서 2010년 평균 12.7%까지 감소했다. 특히 40개 의과대학 중 전통 기초의학 교수 비율이 10% 이하인 곳이 약 1/3(총 13개 대학)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림 회장은 “기초의학 내실화를 위한 교육정책 수립 등을 통해 탄탄한 교육환경과 기초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며 “국가 연구비 지원 없이는 기초와 임상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정착할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연구 육성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